미각 장애로 내원한 50대 남성 쓴맛만 인지, 단맛·짠맛 못느껴
후각 이상, 빈도 가장 높은 후유증… 미각 장애, 대개 후각 장애와 동반
영구 장애 여부 판명에 1∼2년 소요… 증상 지속땐 영구장애 확률도 10%
“오미크론 변이에 걸린 후 치료받고 몸은 회복됐는데 후유증으로 후각과 미각이 아직 되돌아 오지 않고 있어요.”
지난 3월 중순 인터넷포털사이트 전문가 상담 코너에 올라온 글이다. 글쓴이는 “병원에서는 기다리면 자연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데, 한 달이 넘도록 변화가 없고 후각과 미각 기능이 점점 더 떨어지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중이거나 격리해제된 사람들 가운데 후각과 미각 상실을 경험하는 사례가 꽤 된다. 2020년 코로나 유행 초창기부터 관련 연구가 지속 보고돼 왔다. 최근 국내 의료기관에 속속 개설되는 코로나19 후유증 혹은 롱 코비드(장기 후유증) 클리닉에 후·미각 장애를 겪는 이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10%는 6개월 이상 지속
지난 3월초 국내 처음 코로나19회복클리닉을 문연 하나이비인후과병원이 3월 3일~4월 25일 문진 기록을 제출한 266명을 분석한 결과 약 10%(27명)가 후·미각 장애 증상을 호소했다. 환자들은 20·30대부터 70·80대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았다. 27명 중 22명(81%)은 격리해제 후 한 달 이내에, 나머지 5명은 1개월 넘어 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 장규선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9일 “격리해제 후 3주나 한 달 뒤 오는 경우가 가장 많고 고령층보다는 젊은 환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후유증클리닉을 개설한 인제의대 서울백병원에는 지난 2월 코로나를 경험한 20대 여성과 5~6개월전 감염됐던 50대 남성이 후각 장애를 호소하며 방문했다. 이들을 진료한 이비인후과 노경진 교수는 “둘 다 이전에 냄새 맡는 정도가 100%이었다면 지금은 6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거나 향수 냄새가 예전보다 약하다며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미각 장애로 내원한 50대 남성은 쓴맛만 인지하고 단맛과 짠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코로나를 겪은 후 후각 및 미각 장애의 발현 빈도는 연구마다 편차가 있다. 이는 인종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변이별 차이) 등 여러 원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학술지 ‘셀’에 지난 3월 발표된 미국 뉴욕대와 컬럼비아대 공동 연구 논문을 보면 코로나에 의해 유발된 후·미각 장애 유병률은 5~30%로 다양하게 보고됐지만 이 중 10% 내외는 6개월 이상 장기간 지속되는 걸로 나타났다. 한양대 명지병원 이비인후과 송창은 교수는 “후각 이상은 코로나 후 발생하는 감각 이상 중 가장 빈도가 높은 후유증으로, 영구 장애 여부를 판명하려면 1~2년 걸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나 데이터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에 의한 후각 장애는 기존의 감기나 독감(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감염, 축농증 등에 의한 후각 장애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코막힘이나 콧물 등 동반 코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후각 신경세포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ACE-2 수용체가 없어 직접 감염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수용체를 발현하는 주변 지지 세포를 감염시켜서 염증 반응이 폭발적으로 유발되는 이른바 ‘사이토카인 폭풍’에 의해 2차적으로 후각 신경이 마비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송 교수는 “지난달 네이처지와 앞서 3월 셀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후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축소되는 현상이 발견됐으며 유전자 수준에서 후각 신경 퇴화가 발생하는 것으로 관찰됐다”고 했다. 후각 장애는 미각 장애보다 더 많은 비율로 발생한다. 미각 장애 단독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10% 미만이고 대개 후각 장애에 동반된다. 혀에 있는 미각 조직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이론상 미각 이상만 발생할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느끼는 미각 장애는 후각 기능이 떨어지면서 음식의 향을 맡지 못하기 때문에 2차적으로 느끼는 감각 이상이다.
한 달 넘게 지속 시 후각 재활 권고
코로나 후각 장애 환자는 크게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무후각(anosmia)’, 강한 냄새만 맡을 수 있는 ‘저후각(hyposmia)’, 실제와 다른 향으로 느끼는 ‘후각 착오(parosmia·이상 후각)’를 호소한다.
송 교수는 “저후각의 빈도가 높지만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 중에는 무후각, 후각 착오의 빈도가 늘고 있다. 후각 착오는 예를 들어 꽃 향기가 담배 냄새처럼 느껴지거나 커피 향이 쓰레기 또는 썩은 생선 냄새로 느껴지는 경우”라고 했다. 특히 근래 유행한 오미크론 변이 감염의 경우 기존 변이들에 비해 수 주~수 개월간 이상 후각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노 교수는 “대부분의 환자에서 후각과 미각은 한 달 내에 회복되나 6개월 넘게 기능 저하가 계속되는 경우 안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증상 초기일 경우 경과 관찰, 먹거나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 약 처방(염증 치료 목적) 등을 할 수 있으나 6개월 넘게 지속된 후·미각 장애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실정이다. 한 달 이상 후각 장애가 지속되면 마비된 신경 기능을 자극하기 위한 후각훈련 치료가 권고된다. 이는 레몬 커피 장미 계피 참기름 등 익숙한 냄새 2~4가지를 준비해서 순차적으로 10~15초 가량 들이마시고 다음 향을 맡기 전 1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이런 훈련을 하루 두 번씩 6개월 이상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노 교수는 “후각 신경은 청각이나 시각과 달리 가소성을 가지므로 꾸준히 자극하면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해외연구에선 후각 재활 치료가 저후각, 무후각 보다는 이상 후각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됐다. 장규선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전문의는 “미각 재활 치료법은 별도로 없지만 미각 소실에 불편을 느낀다면 비타민, 견과류 등 침을 돌게 하는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이 도움될 수 있다”고 했다.
후·미각 기능이 떨어지면 식사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화재나 유독가스를 인지하지 못해 위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또 상한 음식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심으로 배탈이 날 수 있고 남에게 상한 음식을 대접할 수도 있다. 식욕 또한 떨어져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송창은 교수는 “후·미각 장애가 지속되면 늦어질수록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영구장애 확률도 10%에 달한다. 코로나 감염 후 후각과 미각이 줄었다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조금이라도 빨리 전문의를 찾아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