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세상속으로…] ‘자녀 교육’의 센터가 된 교회, 마을을 하나로 잇다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지난해 제주 구좌 당근밭에서 당근과 동화책 ‘당근이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구좌제일교회 제공
 
어린이들이 그린 구좌 마을 지도. 구좌제일교회 제공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은 평대와 세화해수욕장을 품은 제주 동쪽 끝 마을이다. 최근 들어 월정리와 비자림에 관광객이 몰리기 전까지 제주 사람들에게도 촌으로 불릴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황호민 목사와 박미란 사모가 이곳에 온 건 2002년 구좌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으면서였다. 하지만 출신과 혈연, 학연을 중요하게 여기며 외지인과 섞이지 않으려는 ‘제주 궨당’ 문화는 황 목사 가정에게 큰 장벽과도 같았다.

지난 2일 교회에서 만난 부부는 당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한숨부터 지었다. 박 사모는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주민들 속에서 목회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며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고 싶어 아이들에게 다가갔지만 ‘유괴범이냐’ ‘학교 앞에서 전도하지 말라’는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부부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 주민을 만나기로 하고 ‘부캐’(부수적 캐릭터)를 앞세웠다. 황 목사는 동네 조기축구회에 나가 주민들을 어울리며 ‘매너 좋은 선수’라는 평판을 얻었다.

쉬지 않고 주민을 찾아다닌 건 오히려 박 사모였다. 학교 상담사와 성교육·학교폭력 예방 교육 강사 자격을 얻은 뒤 공식적으로 초중고생들과 학부모들을 만났다. 청소년 지도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다 구좌읍 자치위원과 지역사회 보장협의체 위원으로도 나섰다. 당시 외지인이 단 한 차례도 맡은 일이 없던 평대초등학교 어머니회장도 지냈다. 부부가 궨당을 극복한 건 결국 시간과 끈기 덕분이었다.

‘마을 교육공동체’는 이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황 목사는 “2004년 교회 옆 공터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던 남매를 교회로 초청해 시간을 보내다 작은 공부방을 만들게 됐고 규모가 커지면서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가 문을 열었다”며 “센터는 방과 후 돌봄뿐 아니라 학습이 느린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꿈을 심어주는 마을 학교로 성장했다”고 했다.

센터를 기반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마을교육 공동체 별밭’도 문을 열 수 있었다. 주민들은 198㎡(60평) 규모의 건물을 선뜻 내주고 4억원을 들여 리모델링도 해줬다. 아이들을 잘 길러 줄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질그랭이거점센터’를 세우기 위해서는 주민 모두 힘을 모았다. 4층 높이 센터에는 세화리사무소와 카페477+, 구좌주민여행사, 세화스테이가 둥지를 틀었다. 카페477+라는 이름에는 마을협동조합 조합원 477명이 참여해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았다.

구좌읍 주민들은 함께 아이들을 키운다. 아이들이 마을 어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삼춘 고라줍써(삼춘 말해 주세요)’라는 프로그램은 신구 세대를 든든히 묶었다. 제주에서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어른을 ‘삼춘’이라 부른다.

지난해에는 아이들이 기록한 삼춘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출판했다. 마을 그림책 ‘당근이지’도 이런 만남이 재료가 됐다. 당근 농사를 짓는 삼춘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직접 쓰고 그려 완성한 동화책이다.

마을 교육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20년 동안 궨당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황 목사 부부의 노력에서 시작됐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2012년 조직된 구좌어린이합창단도 또 다른 구심점이 됐다. 이를 시작으로 어른합창단도 생겼다. 2015년에는 구좌청소년오케스트라도 조직했고 미국 시애틀청소년오케스트라와 교류 음악회도 열었다.

황 목사는 “지역에 다가가는 교회로, 지역과 성장하는 교회로, 생명을 살리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면서 “그 결과 지역과 함께 교회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중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를 개방하고 주민과 만나는 접점을 넓혔다. 교인들의 보람도 무척 크다”면서 “교회 밖에 나오니 주민과 할만한 일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교회 문을 열고 마을로 나오라”고 권했다.

박 사모는 “교회 밖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터전이 있고 다음세대를 주민들과 함께 길러낼 기회도 있다”고 거들었다.

제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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