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는 팔복의 여섯 번째 가르침은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이자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기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을 보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렸던 모세조차도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사도요한 역시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분명하게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은 본문 8절에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보는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입니다. 이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바울이 했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이 밝혀지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준비하신 기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수기 6장 2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제사장 아론의 축복을 보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얼굴을 내게 비춰주시고 내게로 향하여 드시는 것이 곧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또한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는 것을 뜻합니다. 창세기 32장의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한 야곱의 이야기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야곱은 천사를 결코 보내주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그가 이토록 필사적인 이유는 다음날이 되면 자신을 죽이러 오는 형, 에서를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축복해 달라는 말은 나 좀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인 것입니다. 천사는 그의 바람대로 그를 축복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그곳의 지명을 ‘브니엘’이라 부른 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32:20)
이후 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합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씨름하면서 그 분의 임재를 경험했기에 그는 죽음에서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보고 만나야 합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만날 때만이 우리도 야곱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려지고 어두운 방황이 끝나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야말로 처참하고 절망뿐인 인생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보고 느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살아계심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순결하다는 것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마음을 말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외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마태복음 6장 22절 이하에서 눈의 비유를 들어, 사람은 두 주인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함께 섬기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 더럽혀진 상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물을 보는 육신의 눈이 아닌 하나님을 보는 마음의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깨끗하고 순전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부패한 속사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마가복음 4장에 등장하는 네 가지 밭에 대한 비유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지만 그 말씀을 받는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가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이 길 가같이 닳고 닳아서 열정도 소망도 간절함도 없지는 않은지, 돌밭같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으로만 꽉 채워져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가시덤불 밭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손이 부르트고 피가 날지라도 그 더러워지고 혼탁해진 마음을 깨끗한 마음으로, 청결한 마음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나의 노력과 공로로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악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고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과 영혼이 주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묵상하며 나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여러분, 주의 보혈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더러워진 마음을 청결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더럽혀질 때마다 주님의 보혈을 붙잡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져서 날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