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우리 삶은 형통과 곤고가 병행합니다. 저에게도 형통의 축복과 함께 여러 역경이 있었지만 모태신앙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말 갑자기 닥친 역경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만한 엄청난 고난의 파고였습니다.
2011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초대 총장으로 부임하면 서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의 첨단 연구시설을 활용해 다년간 공동연구를 수행했습니다. LBNL은 13명의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세계적 기초연구소로서 무명의 신생 대학인 DGIST가 이런 세계적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세계적 저널에 수십 편의 논문을 내는 성공적 연구 결과를 창출해 4년 연속 최우수 평가를 받았고, 과기부 우수성과 과제로 선정돼 장관 표창까지 받았던 사업이었습니다. 이런 사업이 음해성 투서로 과기부 감사를 받게 되었고, 급기야는 과기부가 당시 기관장인 필자를 포함해 사업 관련자 9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입니다. 모 방송사에서는 혐의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필자의 실명을 노출하며 특종 보도하였습니다. 황당무계한 과기부의 검찰 고발과 방송사의 보도를 접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여러 과학기술단체가 과기부의 검찰 고발의 부당함을 지적했고, 1000여명 과학기술인들이 성명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과기부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업 참여 연구자들에 대한 감사를 집요하게 했고, 검찰의 압수수색도 있었습니다. 연구 수행과정에서 양심에 부끄럽고 불의한 일을 하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사필귀정이 될 것이라고 예단했습니다. 마침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검찰이 20개월 만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걱정해 주었던 주위 분들이 ‘무고죄’로 관련자들을 고발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서 필자와 참여 연구자들을 파멸로 몰아가려던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마음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남을 모함해 반사이익을 보려는 그들이 측은하고 용서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용서는 최대의 복수’라는 말을 되새기며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도모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약력> △한국물리학회 회장 △DGIST 초대 총장 △카이스트 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