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먼저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 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노랫말을 먼저 시로 읽는다.
이어 찬송 해설이다. 박치용(59) 서울모테트합창단 지휘자가 이야기한다. 박 지휘자는 “찬송가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는 우리나라 합창음악과 교회음악의 개척자인 장수철 선생께서 아내 최봉춘 여사의 시에 작곡하신 곡”이라며 “봄 햇살같이 따듯하고 명랑한 분위기와 달리 6·25전쟁 직후 가족과 떨어져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 중이던 장 선생이 당시 열두 살 큰딸의 병사 소식을 편지로 접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소개한다. 머나먼 타국에서 괴로워할 남편을 위해 한국의 아내는 찬송 시를 글로 써서 보냈고, 남편은 슬픔 속에서 이 아름다운 곡조를 작곡했다.
이윽고 ‘신령한 노래’다. 책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서울모테트합창단이 부르는 찬송가 570장뿐만 아니라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헨리 T 스마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찬송가 378장 ‘내 선한 목자’까지 유튜브로 감상하도록 돕는다. 유튜브로 찬양을 들으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어느새 이단·사이비 단체의 것으로 빠지기 쉬운 요즘, 책은 찬송의 길잡이 역할까지 감당한다.
‘지휘자 박치용의 내 맘에 한 노래 있어’(홍성사)를 출간한 박 지휘자를 25일 서울 서초구 합창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골 3:16)를 강조한 소금 박재현 서예가의 글씨가 지하 연습실 한쪽에 걸려 있다. 박 지휘자는 서울예고에서 작곡과 성악을 공부하고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1989년 민간 프로페셔널 합창단인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창단했다. 맑고 깨끗한 울림과 정제된 화음으로 한국교회의 교회음악 지킴이 역할을 33년간 해왔다. 그는 “프로 음악가로 사는 삶 속에서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교회음악은 물론 정통 클래식 음악까지 공연해왔다”고 말했다.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어를 넘어 특정 시간 속에 발휘되는 모호한 예술이 음악이다. 박 지휘자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설명 너머 절대자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성도들이 말씀 기도 신학 등 여러 도구로 이해하고 배우려 노력하듯, 음악 역시 감정의 발로(發露) 이상의 지정의(知情意)로 온전하게 이해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했다.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으로 시작해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멘델스존의 ‘엘리야’의 세계 3대 오라토리오 등 교회음악의 명작들을 이야기한다. 백과사전처럼 목차를 활용해 좋아하는 곡을 찾아 읽으면 좋다.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 서울모테트합창단은 한해 40~50회 열던 연주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제한된 정기연주회에 그쳤다. 합창단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운영하던 민간 합창단의 재정 압박은 필설로 옮길 수 없다. 박 지휘자는 “국민일보 겨자씨에 1990년대 소개된 ‘위기는 각성을 낳고, 각성은 참신하고 창조적인 방향을 낳는다’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스크랩해 간직해 왔다”고 말했다. 교회음악을 하는 민간 예술은 위기가 아닌 순간이 드물다. 늘 벼랑 끝의 처지이지만 그 위기 속에서 각성과 창조성이 나온다고 박 지휘자는 강조했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가는 지금, 합창 공연도 부활하고 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무대에 올린다. 박 지휘자는 “브람스는 개신교 신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음악가”라며 “코로나로 고통받던 분들께 위로와 평안의 노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