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읽었던 기사가 생각이 납니다. 청순한 이미지로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한 배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배우는 인기의 절정에 있을 때, 세상에 드러나지 않길 원했던 내밀한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보도되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잠적했다가 재기를 시도했으나 여론은 싸늘했습니다. 그렇게 재기에 나서기를 반복했던 이 배우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작정하고 이미지 변신을 위해 어느 봉사단체에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위축돼 있었습니다. 극도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배우는 이미 죗값을 충분히 치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 배우도 그런 여론이 있을 거로 기대하고 재기를 꿈꿨을 듯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대중들은 별로 이 배우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현대인은 다들 바쁩니다. 나 살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 생활까지 신경 쓰고 간섭한 여유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 배우의 삶이 참 딱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죄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 기억에선 사라질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 그 배우가 아직도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것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자기 죄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죄 때문일지 모릅니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불쑥 고개를 내밀면서 나를 괴롭히곤 합니다.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법정에서 무죄 선고받았다고 죄가 없어집니까? 물론 무죄 선고를 받으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죄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 번 범한 죄는 우리 의식 속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법을 어겼을 때 생깁니다. 이것을 우리는 범죄라고 부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내 양심이 아는 죄입니다. 셋째는 나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잘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드러나는 죄입니다.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이 세 번째 죄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큰 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서 깨끗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양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은 얼마나 암울하겠습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 그 희망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 제물이 된 분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속죄의 어린양이 돼서 십자가 위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보혈이 모든 죽어가는 죄인들을 위해서 온 세상에 뿌려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우리에게 보내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할 때 우리는 죄로부터 놓임 받게 되고 자유와 안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황덕수 동면교회 목사
◇충남 천안에 있는 동면교회는 하나님 사랑을 지역 사회에 흘려보내는 ‘사랑의 공동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믿음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