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지도자들 6·25 전쟁 때 ‘기독교 의용대’ 조직했다

김흥수(오른쪽 두번째) 기독교사상 주간이 2003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생전의 김병섭(가운데) 장로를 인터뷰한 뒤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흥수 주간 제공


6·25전쟁 발발 직후 일부 개신교 지도자가 국방부와 협의해 ‘기독교 의용대’를 조직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적지 않은 의용대원이 국군과 미군에 편입돼 실제 전투에 참여했으며 당시 미군에 편입된 의용대가 카투사(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의 전신이다.

자칫 묻힐 뻔했던 역사를 발굴한 건 윤경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김흥수 기독교사상 주간 등 역사학자였다. 이들이 2003년 미국 워싱턴주 시에틀에서 김병섭 장로와 인터뷰한 내용이 기독교사상 6월호에 실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면려회전국연합회장이던 김 장로는 피란 중 대전에서 한경직 목사를 만나 의용대 조직을 논의했던 주인공이다. 한 목사와 김 장로는 얼마 뒤 대구로 이동해 장경근 국방부 차관을 만나 연대급(3000명) 모병은 교회가 하고, 신분증 발급과 훈련·무기·식량 지원은 국방부가 맡는다는 내용의 협의를 마무리지었다. 김 장로는 인터뷰에서 “7월 중순 대구 시내 주요 교회와 중심가에 포스터를 붙여 모병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면서 “대구 시내 교회를 병영으로 사용했고 찬송 ‘십자가 군병들아’를 군가로 제정한 뒤 대구 계성학교 운동장에서 국방부 교관이 나와 훈련시켰다”는 내용을 남겼다.

김흥수 기독교사상 주간은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원병 중에는 강문규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과 김소영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등 훗날 사회 지도급 인사가 된 이가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인민군의 남하 속도가 너무 빨라 7월 말 서둘러 부산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편제를 제대로 꾸리지 못했고 결국 국방부와 미군의 요청에 따라 각 부대로 재편된 뒤 흩어졌다”며 “일각에서 기독교 의용대가 무리하게 참전해 전멸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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