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세상속으로…] 이웃의 일꾼 돼 일군 ‘농촌 목회’… 어르신·청소년을 보듬다

최인석(오른쪽 네 번째) 전북 진안 옥토성결교회 목사와 이미경(맨 오른쪽) 사모 가정이 지난해 6월 그룹홈 아이들과 교회 앞 금계국 꽃길 앞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5㎞에 달하는 꽃길은 4년 전 최 목사네 식구들이 직접 씨를 뿌려 조성했다.
 
진안군 오천리 이장이기도 한 최목사가 지난 9일 평촌경로당 앞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다 사진을 찍는모습.


전라북도 동북쪽 산간 지방을 에워싸고 있는 무주 진안 장수. 세 도시의 이름을 딴 ‘무진장’이란 별칭에 걸맞게 이곳 사람들은 도시의 빌딩숲 대신 소백산맥 줄기에 걸쳐진 웅장한 산세를 벗 삼아 살아간다. 지난 9일 굽이굽이 난 도로를 달려 진안군 오천리 평촌마을에 다다르자 천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노란 금계국과 고추밭 사이로 기자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이 마을 이장 최인석(55) 옥토성결교회 목사다.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새벽을 깨우지 않으면 농사는 헛물이에요. 오늘도 5시부터 일어나 호박밭에서 고라니망 치고 개복숭아 나무 주변으로 예초기를 돌렸죠. 잡초는 농부의 게으름을 절대 허락하지 않아요.”

고추밭에서 팔토시를 끼고 작업용 모자를 눌러쓴 채 고추 아래순을 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천생 농부였다. 30년 전 신학대를 졸업한 뒤 터키 선교사로 10년을 보낸 최 목사는 그 후 청년 목회, 양로원 원목 활동을 하다 지난 2010년 진안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부터 농촌 목회를 꿈꾼 건 아니었다.

“양로원에서 사역하면서도 정작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는 못 모시고 있다는 게 맘에 걸려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완주군 삼례읍이 고향인데 인근 지역을 둘러보다 청정 지역인 진안에 뿌리를 내린 거지요.”

외지인을 향한 경계심과 편견 어린 시선이 없을 리 없었다. 평균 연령이 80대를 훌쩍 넘는 마을에 40대 초반의 부부가 들어와 집 짓고 농사지으며 살갑게 어르신들을 대할 때도 주민 대부분은 ‘웬 젊은 사람이 며칠 저러다 말겠지’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몇 달이 되고 몇 달이 몇 년이 되자 주민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각종 고지서를 받아도 글을 읽지 못해 답답해하던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회관에서 한글교실을 열었고, 좋은 반응이 나오자 수학 건강체조 한지공예 교실을 잇따라 마련했다.

두터워진 신뢰는 마을 간사, 노인회 총무 등 최 목사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투로 이어졌다. 최 목사는 “마을의 일원으로 이웃이 필요한 것에 눈과 귀를 열었을 뿐이다. 폭이 좁아 매년 범람하던 하천이 넓어지고, 석회질이 많아 고생하던 주민들에게 광역 상수도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하나님의 종으로, 그리고 이웃의 일꾼으로 살아오면서 마주한 기적들”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 2016년부턴 이장을 맡아 두 번째 연임 중이다.

30가구가 사는 마을엔 15가구가 홀몸노인이다. 마을 어귀를 거닐며 경로당 앞을 지나다 어르신들을 발견한 최 목사가 다가가자 드라마 ‘전원일기’에 등장할 법한 장면이 펼쳐졌다.

“옥림 어머니 전기 나간 건 잘 고쳐졌어요? 복순 어머니 무릎은 괜찮으셔?”

“인자(이제) 괜찮어요. 이장 목사님이 솔찬히(많이) 욕봤지(애썼지). 우리 이장님 같은 분이 없어. 암만 그라고 말고.”

농부 이장 목사 말고도 최 목사에겐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 큰아빠다. 가정에서 상처받고 부모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진안에 처음 둥지를 텄을 때부터 그룹홈 ‘창조의 집’을 운영하면서 얻은 호칭이다. 작업장과 예배당 옆으로 사이좋게 지어진 그룹홈 공간엔 9살부터 24세까지 6명의 아이, 성인이 함께 자란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최 목사의 아들까지 포함하면 총 7남매의 아빠로 살아가는 셈이다. 덕분에 최 목사 부부 집은 동네에서 가장 젊은 가구이자 마을에 활력소가 돼주는 공동체다.

11년째 큰엄마 역할을 맡고 있는 이미경(52) 사모는 “지금까지 30명의 아이들이 창조의 집을 새가정 삼아 자라고 둥지를 떠났다”며 “가로 6m 세로 3m의 컨테이너에 나무 십자가 하나 달고 예배드리던 시절부터 아이들은 교회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3년 전 식구가 된 이슬(18)양은 이 집의 분위기 메이커다. 이양은 “큰아빠 큰엄마 덕분에 진짜 가족이 뭔지 알게 됐다”며 “이곳에서 받은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멋진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주민들의 마음을 열기까지

타지에서 귀농한 농촌 목회자로서 마을 속으로 들어가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평촌마을 이장 최인석 옥토성결교회 목사의 답은 간결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이웃이 되는 것. 그게 이 마을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슴에 새긴 겁니다.”

2010년 이 마을에 처음 삶의 터전을 마련했지만 최 목사가 동네 주민들에게 ‘목사’로 불리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였다. 그저 듬직한 머슴처럼 이웃들의 필요에 응답해 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자기가 손해를 봤으면 봤지 동네 사람들 손해 볼 일은 안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이다. 유기농업 기능사, 산림 기능사, 사회복지사 등 그의 이름이 새겨진 자격증은 무려 21개다. 자기 계발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다.

“주민분들한테 필요한 걸 찾아 공급하다 보면 관련 분야를 공부하게 되고 자격증이 있을 때 더 수월하게 일이 진행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아는 거죠.”

해외 선교, 도시 목회, 청년 사역, 양로원 사역 등을 경험한 그는 농촌 목회를 ‘진정한 가나안 땅’이라고 했다. 일단 예배 공간을 마련하고 지속해 나가는데 비싼 비용이 드는 도시 목회에 비해 농촌은 귀농 정책자금을 비롯해 재정적 지원이 풍성하고 고정비용이 적게 든다. 농업과 농촌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만 있다면 지역별 귀농귀촌종합센터, 농촌종합지원센터, 마이스터대 수강 등 다양한 교육 환경도 보장된다.

최 목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50대에만 농촌 목회를 시작하더라도 할 수 있는 사역이 무궁무진하다”며 작업복을 고쳐 입었다.

진안=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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