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인텔,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구체안은 아직 없다. 하지만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에 뜻을 같이 한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합류하면 ‘ARM 인수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ARM 인수의사를 밝힌 업체는 퀄컴, 인텔, SK하이닉스 등이다. 핵심은 컨소시엄이다. 반도체 업계 상황을 감안하면, 특정 기업이 혼자 ARM을 인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엔비디아에서 400억 달러에 ARM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영국 등의 경쟁 당국이 반대해 무산됐었다.
ARM은 저전력으로 구동되는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다. 스마트폰용 칩셋 설계만 놓고 보면 시장의 90%를 차지한다. 퀄컴 스냅드래곤, 애플 A 칩셋, 삼성전자 엑시노스 같은 주요 기업의 스마트폰용 칩셋이 ARM의 코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앞으로 자율주행차 등에 반도체가 더 많이 필요해지면, ARM 코어의 사용처도 늘 수밖에 없다. 특정 기업에서 ARM을 인수하면 반도체 시장의 지형이 한 번에 바뀔 수도 있다. ARM 코어를 사용하는 업체들이 로열티와 기술사용 등에 종속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누군가 독점적으로 ARM을 소유하는 건 모든 반도체 기업이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ARM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자산이며, 반도체 산업 발전에서도 핵심적이다.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컨소시엄이 ARM을 인수할 정도로 충분히 크다면 다른 업체들과 함께 참여할 의사가 있다. ARM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려면, 많은 회사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팻 겔싱어 인텔 CEO도 ARM 컨소시엄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 2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ARM이 기업공개(IPO)를 하거나 컨소시엄 형태로 소유되면 좋겠다”면서 “인텔은 ARM 코어를 많이 쓰진 않는다. 하지만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를 통해 ARM 사용을 점차 늘려나갈 수 있다”고 했다.
SK하이닉스도 컨소시엄 참여를 천명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ARM 인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ARM은 한 회사가 인수할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ARM 인수에 참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인수·합병(M&A) 대상을 찾고 있다. ARM은 충분히 매력적인 매물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겔싱어 CEO와 만나 협력을 논의하면서 ARM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인텔과 삼성전자가 협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인텔, 퀄컴-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컨소시엄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ARM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매각 실패 후 주식시장 상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다만, 최근 금융시장 침체로 상장을 해도 제대로 기업가치를 평가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주요 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 제안을 받는다면, 소프트뱅크도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