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걸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행실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받으니 입술로 고백하면 되고 행실은 세상 사람처럼 살며 죄까지 지어도 상관없는 걸까요? 그래서 야고보서 2장 14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한 번도 행실이 따르지 않는 믿음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성경 66권이 전부 하나님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라는 말로 도배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행실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아내가 남편을 두고 외도하고 남편이 번 돈도 그 남자에게 갖다 주면서 남편만 보면 하는 말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 당신 없이 못살아. 난 당신만 믿고 살아”라고 한다면 그게 남편을 정말 믿고 사랑하는 것일까요.
이건 모욕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죄짓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반복한다면 이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 건 이미 행실이 따르는 믿음을 전제한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것이 너를 구원하지 못한다”(약 2:17~20)는 말과 반대되지 않고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이 믿음과 행함을 분리해 구원은 믿음 즉 입술의 고백으로 받은 뒤 천국으로 가며 행함은 죽은 뒤 상급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 결국 죄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 즉, 좁은 문으로 들어왔으나 좁은 길로 계속 가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다 죽은 뒤 영원히 죄도, 고통도 없는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세상을 사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화의 과정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가야 하는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종교인데 그 믿음이라는 건 행실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해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와 좁은 길을 계속 걷는 삶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에서 벗어나 넓은 길로 가면 그 끝에는 천국은 없습니다. 받은 구원도 잃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울 사도가 말한 ‘영으로 시작하였으나 육으로 마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첫째, 세상을 쫓지 않습니다. 둘째, 육신의 생활보다 영혼이 주님 닮아가는 걸 우선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처럼 연약한 자와 함께하며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종교입니다.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닮아가며 살다 하나님 품에 영원히 안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인생의 목적입니다.
신수연 목사(안산 하늘사랑교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소속인 하늘사랑교회의 표어는 ‘성령 충만이 인생의 해답’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목회 사명으로 사역하는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