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1000번 넘게 간증 집회를 했어요. 5월에만 30번을 했는데 저의 발이 돼주는 차량이 매달 1만㎞를 달리며 전국 곳곳을 찾아갑니다. 힘이 드냐고요? 오히려 힘이 됩니다.”
찬양사역자로 10년을 살아온 김지선(활동명 지선) 전도사에게 무대는 에너지를 쏟아내는 공간인 동시에 에너지를 얻는 공간이다. 찬양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동안 자신의 찬양과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이들에게 힘을 얻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신앙,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경북 경주를 찾은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요즘 아이들에겐 ‘뽀미 언니’ 청년 청소년에겐 ‘아이유’ 권사님 장로님들에겐 ‘장윤정’으로 통한다”고 소개했다. 다양한 세대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온 무대 위 모습들이 붙여준 수식어들이다.
김 전도사가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은 혼신을 다하는 공연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생 스토리가 홑실과 날실이 되어 무대 위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온 삶을 ‘고난이라 쓰고 축복이라 읽게 된 여정’으로 축약했다. 생기 넘치는 표정과 재치있는 입담 이면에는 쉬이 가늠할 수 없을 상처와 아픔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학대가 이어지면서 15세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고, 두살 터울의 남동생과 지방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얹혀살게 됐어요. 학교생활은 왕따와 학교폭력으로 얼룩졌고 영양실조에 신경성 위염과 장염을 달고 살면서 베개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죠. 그저 큰집에서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어요.”
암흑 같던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돼준 건 평소 그를 눈여겨보던 음악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친분이 있던 교회 사모에게 김 전도사를 소개했고 음악에 재능을 보이던 그에게 무료로 성악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내줬다. 성악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후엔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도 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유학 기회를 스스로 내려놨다. 김 전도사는 “우울함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니 ‘감사’란 단어가 떠올랐고 지금의 삶에 감사를 더 담아내기 위해선 낯선 곳에서의 도전보다 이 땅에서 은혜 갚는 길을 택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고민 끝에 개인의 유익보다 감사를 택한 그에겐 꿈에 그리던 대전시립합창단 입단, 신앙 안에서 만난 배우자와의 결혼 등 더 큰 축복이 잇따랐다. 김 전도사는 “대전시립합창단에 입단해 돈을 벌면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당시 이례적으로 독일 출신 지휘자를 시립합창단에 초빙하게 됐다”면서 “독일 유학을 내려놓았더니 하나님께서 독일 지휘자를 한국으로 보내주시면서까지 음악적 재능을 발전시키신 셈”이라며 웃었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40일 성경필사에 나섰던 2011년 가을,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첫째 아이의 생명을 앗아갈 뻔한 감전 사고였다.
“둘째 아이를 씻기는 동안 아들이 온몸에 물이 묻은 채로 젓가락 두 개를 콘센트에 넣은 거였어요. 119구조대원이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할 만큼 큰 사고였고 대수술을 세 번이나 했죠.”
220볼트의 전기가 관통한 아이의 몸엔 ‘신경과 관절이 끊어지고 장기가 대부분 손상됐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후 3일 동안 시커멓게 변한 피부 조직을 떼어내고 소독만 하는데도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함께 울며 기도해주는 것뿐이었다. 김 전도사는 절망 대신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자에게는 성경 어디에도 고난이 저주라고 한 적이 없다’는 말씀을 붙들었다. 그는 “성경을 필사하며 고난 가운데 진짜 축복을 써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길 소원했던 기도가 이뤄졌던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퇴원하던 날 손가락 하나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던 아이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김 전도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찬양사역자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그에겐 뮤지컬 음악감독, 찬양인도학과 교수, 클래식 해설자, 합창단 지휘자 등 다양한 직함이 따라붙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가 들려준 삶의 여정이 엿보이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세운 계획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끌려가는 게 삶의 목표예요. 계획 없이 사는 게 계획인 셈이죠(웃음).”
경주=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