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를 만났다. 이코노미 좌석 좁은 거리 탓에 의자를 내 쪽으로 벌러덩 눕힌 앞사람의 정수리가 두둑한 내 뱃살에 닿을 수도 있는 독특한 자세로 화면을 응시했다. 거장 스필버그 감독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이고 마에스트로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원곡들을 이런 자세로나마 관람할 수 있어 기뻤다. 미국 뉴욕 링컨센터 재개발을 앞둔 슬럼가의 발코니에서 주인공 토니와 마리아가 애절하게 부르는 이중창 ‘투나이트(Tonight)’는 아름다웠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뉴욕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다. 1957년 뮤지컬로 초연돼 반세기 넘게 사랑을 받았다. 이탈리아계 폭력조직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폭력조직 샤크파의 대결이 이번엔 스필버그 특유의 발랄함을 통해 활기찬 맘보 댄스로 다시 태어난다. 화려한 춤과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 속에서 사랑을 말하던 영화는 후반부엔 용서를 강조한다. 그래서 ‘사적이며 공적인 신앙’의 저자 윌리엄 스트링펠로우는 이 뮤지컬을 일컬어 “주일학교 공과 교재보다 훨씬 더 좋은 교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트링펠로우는 성공회 평신도 변호사이면서 신학자였다.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 검찰 로펌 기업 등의 성공 가도를 달리는 대신 뉴욕 이스트 할렘 빈민가로 향했다. 복음 때문이다. 처음에는 지역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나중에는 법률사무소를 차려 가난한 이들, 이주민들, 소외된 이들의 법률 상담을 맡았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를 중심으로 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도왔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참여했으며 20세기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와 교류했다.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그를 ‘성서적 인간’으로 기억했다. 성서적 인간은 “서로의 창조성을 받아들이고 종교적 인간과 세속적 인간이 단결해 이 세상을 얕고 평평하며 닫힌 세상으로 만들려는 모든 움직임에 체계적으로 맞서는 사람”을 의미한다. 진짜 개신교인 즉 저항하는 사람(Protestant)을 가리킨다.
스트링펠로우는 책을 통해 실제 뉴욕 빈민가에서 이탈리아계와 푸에르토리코계 조직 간 싸움 당시 11건의 살인이 일어난 현실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그 싸움에서 동생을 죽인 적을 맨몸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살인의 광기를 멈추게 한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람이 죽고 다수가 화해를 이룬 이야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화해를 나누는 이야기,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섬기는 방식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