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버핏과의 점심



울프강, 피터 루거, 킨스 등과 뉴욕의 3대 스테이크하우스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스미스 앤 월렌스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고약한 편집장을 위해 스테이크를 사러 갔던 곳이다. 이 식당에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매년 ‘버핏과의 점심’을 한다. 뉴욕타임스가 1997년 “논쟁을 종결하는 스테이크”라고 리뷰했지만,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좋아하는 버핏의 초딩 입맛을 생각하면 살짝 의심스럽긴 한데, 여기서 그와 1시간 점심 먹는 값이 올해 246억원에 낙찰됐다.

그 식사에 스테이크는 거들 뿐이다. 사람들은 버핏의 혜안을 접하려 지갑을 연다. “어디에 투자할 겁니까?” 이 질문 빼고는 뭐든 물어볼 수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비싸진 않았다. 2000년 시작해 3년간은 3000만원을 밑돌았다. 10억원 이상에 낙찰되기 시작한 건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월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을 때다. 믿었던 시스템의 갑작스러운 붕괴, 금융위기의 거센 풍랑 속에서 사람들은 현인의 지혜를 찾았다. 그 점심을 먹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예찬론자 중 2007년 낙찰자인 모니시 파브라이와 가이 스파이어가 있다. 7억여원을 내고 버핏을 만난 두 펀드매니저는 “(얻은 것에 비해) 매우 싼 점심” “버핏처럼 되려 했는데, 그게 잘못된 길임을 버핏이 알려줬다”고 했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 버핏과의 점심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한다. 이제 아흔두 살인 나이도 영향을 미쳤지 싶다. 마침 세계 경제는 미증유의 혼란에 빠져 있다.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방향을 찾으려는 이들이 몰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혜를 상품화한 점심. 수요공급 원칙에 따르면, 그만큼 절박하게 지혜가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나저나 그 친구는 잘 있는지 모르겠다. 2019년 종전 최고가인 59억원에 버핏과 점심을 먹은 사람은 중국의 20대 가상화폐 창업자였다. 가상화폐를 쓰레기 취급하는 버핏에게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지금의 폭락 장세를 과연 잘 넘기고 있는지….

태원준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