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만난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사람이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 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하심, 그리고 행동하심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응답으로 이어지는 이 사건으로부터 이 땅의 신앙인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신앙의 여정을 살펴보게 됩니다.
여러분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우리는 이 현장 속에서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 저들이 왜 보입니까.”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는 이것을 보고 누구의 죄인지를 먼저 논하지 마라. 이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 너희는 그 일에 동참하거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오늘 우리의 눈에 무엇이 보입니까.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과 평화 및 통일 과제, 인구절벽으로 인한 사회 위기,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인한 사회경제 구조 변화와 도전, 청년실업과 고령화 사회 문제, 이슬람의 부상과 다문화의 과제, 남녀의 평등하고 조화로운 관계 정립, 다원성을 찬양하는 문화 속에서 복음적 문화의 실천과 세움의 과제, 이단의 도전과 한국교회의 세속주의 극복 과제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가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빛이 있는 낮에야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빛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과 동행하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하려고 서두르기보다는 복음에 합당한 신앙적 신학적 해석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세상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이런저런 일들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요구할 때 세상은 오히려 우리에게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은혜보다 죄를 크게 생각하는 율법주의, 은혜를 세속적 성공으로 환원하는 세속주의가 복음적 토대를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순수성이, 교회의 거룩함과 성결함이 세상의 가치와 목적 앞에 오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의 푯대가 그저 표어로 그치는 교회가 될까 두렵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의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 무엇이 너의 눈에 보이느냐.”
나의 눈에 보이는 문제들은 누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판단하고 먼저 정죄하라고 보이는 게 아닙니다. 바로 그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그 문제로 인해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라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초대입니다. 그것이 진정 죄를 극복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문제가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것을 묻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 죄보다 더 크고 결정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과 신학 함의 동기와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내 눈에 보여주시는 그것이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이자 사명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신앙인으로서 구별된 삶, 거룩한 삶, 즉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임성빈 교수(장로회신학대·기독교와 문화)
◇임성빈 교수는 장로회신학대 제21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글은 ‘아직도 희망이 있나요’(대한기독교서회)에 수록된 설교문을 압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