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과정서 의료폐기물 이슈로 국내선 처음으로 관심 갖고 동참
감염 예방 위해 일회용 사용 불가피… 지혈 장비 등 철저히 소독 재활용
의료 장비 현명하게 쓸 수 있도록 국내 맞춤 친환경 전략 제시할 것
최근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탄소 중립에 대한 동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이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마스크 등 일회용품 사용이 늘면서 급증한 의료 폐기물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상했다. 영국·미국 등 해외 의학계에서도 탄소 절감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의료계 처음으로 ‘그린 엔도스코피(Green Endoscopy·친환경 내시경 검사)’ 확산을 표방하고 나섰다. 학회는 지난달 그린 엔도스코피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차재명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차 위원장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의료 분야에서 환경 오염에 대한 이슈와 향후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며 “이제 의료 분야에서도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차 위원장과 일문일답.
-그린 엔도스코피가 뭔가.
“그린 엔도스코피는 언제, 누가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마치 ‘친환경’ 용어를 누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닌 것처럼 최근 미국과 영국, 아시아태평양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국내 의학회 중에선 소화기내시경학회가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동참키로 했다. 그린 엔도스코피는 의료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한 효율적인 전략을 도입하고 환자, 병원, 지역사회의 이득을 극대화하도록 의료 장비와 부품을 현명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 탄소 배출은 어느 정도인가.
“국내에서는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해 관련 데이터가 없다. 미국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의료 분야가 온실가스 배출의 8%,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의 7%를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미국 소화기내시경실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은 이산화탄소 8만6000t에 해당하는데 자동차 이동 거리로 환산하면 약 3억4300만㎞에 달하는 배출량이다. 내시경 검사실 병상 1개 당 하루 3㎏의 의료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전문의 1명이 연간 1만3500t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생성하고 그 중 80%(1만800t)는 재활용되지 않는다. 이는 미국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 폐기물 중 3번째에 해당하는 양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1800만건의 내시경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내시경 검사 시 배출되는 의료 폐기물은.
“미국의 경우 1회 내시경 검사에서 1.5㎏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고 그 중 0.3㎏만 재사용되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된 거즈통, 물통, 석션(흡입)통, 석션튜브, 내시경 버튼, 생검용 통, 마취용 석션카테터(도관) 등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진정(수면) 상태로 내시경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마취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마취용 플라스틱 석션통, 석션튜브, 석션카테터 등은 사용되지 않는다.”
-국내 내시경 시술에 따른 폐기물은 어느 정도 되나.
“국내에서 시행되는 소화기 분야 진단 및 치료 내시경 시술의 정확한 건수에 대한 추계는 거의 없는 상태다. 다만 2020년 국제학술지 ‘장(gut)’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대장내시경 검사의 경우 2013년 한햇동안 209만여건이 시행됐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상황(1회 내시경 검사 당 1.5㎏ 폐기물 발생)에 단순 대입해 추산하면 우리나라에서 대장내시경 검사에서만 314만㎏의 폐기물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내시경 환경이 달라 이에 대한 연구나 자료 축적이 필요하다. 지금은 대장뿐 아니리 위 등 다른 소화기 영역 내시경 시술도 늘어 의료 폐기물 배출량 또한 크게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 내시경 검사 어떻게 실천 가능한가.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내시경 검사는 100% 재활용품을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정 양의 의료 폐기물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내시경 검사를 너무 자주 받는다. 예를들어 대장내시경 검진에서 정상이거나 용종이 1~2개 발견되더라도 5년마다 한 번씩 검사받도록 권고된다. 그런데 대장암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으로 매년 검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족성 용종증후군 등 보다 자주 검사받아야 하는 예외적 경우가 있지만 그럴 땐 전문의 상담을 통해 검진 주기를 정하면 된다. 개원가 중심으로 용종이 발견되면 무조건 해마다 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유도해 남발되는 측면이 있다. 환자나 의료진 모두 불필요한 내시경 검사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국가 의료 비용을 높인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위 내시경 검사도 매년 받는 사람이 있는데, 국가검진에서는 2년마다 한 번씩 시행을 권고한다. 다만 장상피화생(위가 장 점막처럼 변함) 등 위암 위험 요인이 있으면 더 자주 해야 한다. 또 다른 실천 방법은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장비 재활용은 감염 문제가 있지 않나.
“내시경 검사의 경우 감염 예방을 위해 일회용 장비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현재 내시경 스코프는 소독해 쓰고 있다. 최근 일회용 스코프도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세는 소독해 재사용하는 것이다. 이밖에 지혈 장비, 내시경 부속 기구 등도 재활용된다. 철저히 소독해서 다시 쓰면 된다. 지금까지 재활용해서 감염이 늘었다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일회용 장비 회사나 의료산업의 마케팅에 편승해 과다 사용 경향도 있어 환경 오염과 의료 비용 증가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감염 예방과 의료 비용, 친환경의 균형이 필요하다.”
-앞으로 TF가 하는 일은.
“한국은 기능성 위장장애로 다양한 소화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많고 위·대장암을 비롯한 소화기암도 흔해 위·대장내시경 검사가 많이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조기 위암이나 대장암의 경우 내시경절제술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어 치료 내시경 또한 급격히 늘고 있다. 따라서 소화기 내시경에서의 탄소 절감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적절한 내시경 적응증 및 과다한 일회용 내시경 기기 사용 감축· 재사용 방안을 강구하겠다. 친환경 내시경 관련 해외 동향을 살피는 동시에 심도있는 조사·분석 연구를 진행해 국내 현실에 맞는 친환경 내시경 전략을 제시할 생각이다. 아울러 내시경 검사 의사들과 국민 대상으로 친환경 내시경 인식 캠페인도 펼치려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