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완화와 무더운 날씨 등 영향… 장염 5∼6월, 작년보다 143% 늘어
폐렴 아데노바이러스 8배 증가… “방역 강화로 저항력 약해진 듯”
생후 35개월의 민수(가명)는 지난달 말 기침과 콧물, 가래에다 구토와 설사 증상까지 겹쳐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항생제 등 약을 처방받아 2주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자꾸 잠만 자려고 하는 등 몸이 처지는 것 같아 입원했다. 검사결과 기관지 폐렴이 확인됐고 호흡기 바이러스인 ‘파라인플루엔자’와 장염을 일으키는 ‘아데노바이러스’가 함께 검출됐다. 아이는 3일간 입원해 투약과 수액 치료를 받고서야 상태가 좋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코로나19인 줄 알고 걱정했다는 엄마는 “마스크도 잘 쓰고 다니고 알코올로 손도 자주 닦는데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든 사이 다른 소아청소년 감염성 질환의 증가세가 심상찮다. 거리두기 해제 등 방역 완화와 함께 때 이른 무더위로 물놀이, 야외활동이 느는 등 계절적 요인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5월 이후 일선 소아청소년과를 중심으로 파라인플루엔자, 아데노바이러스, 장출혈성대장균 등 대표적인 소아 감염성 질환 진료가 늘고 있는 추세다. 더구나 평소 이맘때와는 달리 이례적으로 호흡기와 장염 바이러스의 동시 유행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전문의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인 우리아이들의료재단이 지난 5~6월 산하 병원 2곳의 환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두 달간 감염성 질환 진료는 134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710건)보다 89% 증가한 걸로 집계됐다. 폐렴 확진이 50%(2021년 418건→2022년 629건), 장염 확진은 143%(292건→711건) 늘었다.
폐렴은 아데노바이러스, 리노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등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해 생긴다. 장염은 노로바이러스, 장내 아데노바이러스, 아스트로바이르스, 장출혈성대장균 등에 의해 겪을 수 있다. 실제 유전자증폭(PCR)검사 결과 올해 5~6월 아데노바이러스 검출은 33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42건)보다 8배 증가했다. 파라인플루엔자의 경우 전년에는 한 건도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에는 벌써 109건이 검출됐다. 특히 아데노바이러스와 파라인플루엔자는 올해 6월 들어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코로나19 이전과 유행 기간, 올해 5월 이후 주요 소아 감염병 원인 바이러스 PCR검사 양성률 그래픽 참조).
아데노바이러스는 잠복기(8~10일) 이후 2~3일간 가벼운 발열과 오한, 기침·콧물 등 증상이 나타나고 묽은 설사와 구토 등 장염 증상도 생긴다. 주로 밀집 환경에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지만 분변 등으로 퍼지기도 한다. 파라인플루엔자는 발열과 콧물, 인후통, 기침 등 상기도 감염으로 시작해 쉰 목소리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5세 미만 소아들에 감염된다. 특히 지난해 겨울에 유행했던 파라인플루엔자는 올해는 초여름에 돌기 시작해 의료계에선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은 4일 “보다 정확한 원인 연구가 이뤄져야겠지만 코로나 방역 강화 기간 아이들이 이런 감염성 질환에 노출되지 않아 저항력이 약한 데다 항체도 많이 줄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평년 같으면 6~8월엔 호흡기바이러스 감염은 감소하는데, 오히려 늘고 있어 의료진들이 휴가도 반납하고 진료를 봐야 할 상황이다. 더구나 호흡기와 장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도는 것은 드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가 아닌 소아감염성 질환의 증가 징후는 대학병원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노원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은병욱 교수는 “장출혈성대장균과 살모넬라균, 수족구병, 아데노바이러스, 노로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조금씩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에선 아직 감염자가 없지만 미국 일본 등에서 환자가 나온 원인불명 ‘소아 급성 간염’의 일부 사례에서 아데노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보고도 있는 만큼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아청소년 감염성 질환은 가정에서 한번 유행하면 가족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어 사전 차단 노력이 중요하다. 성북우리아이들병원 김민상 병원장은 “특히 리노와 노로, 아데노는 모두 ‘비피막 바이러스’로 피막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손소독제로는 전파 예방이 부족할 수 있다”면서 “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도 “현재 도는 질환 중 심각한 것은 없지만 장염의 경우 탈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균성 장염은 혈변을 보기도 해 이땐 지체 없이 병원에 와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