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 화도읍에 있는 읍청사 주차장에 청소년들이 적잖게 모여있었다. 읍청사는 청소년들이 모일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텐트가 있었고 청소년들은 텐트에 마련된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음식들은 청소년들을 위해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읍청사 주차장에 모이는 청소년들의 수는 많아졌다. 일부 거칠어 보이는 청소년들도 허기진 배에 음식이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얼굴이 편해지고 즐겁게 농담도 했다. 읍청사 주차장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먹고 놀면서 행복을 누리는 해방구였다.
지난 4일 국민일보가 만난 ‘청소년 사랑의 밥차’는 2015년부터 8년째 이어져 왔다. 밥차를 시행하는 주체는 남양주의 작은 교회인 ‘힘찬교회’였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임태석 목사는 모태신앙이거나 일찍 예수와 동행한 삶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소년기에 세상에 빠져 인생의 고민과 방황을 많이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진하게 겪어본 만큼, 청소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애착도 남달랐다. 이에 목회의 길에 들어선 후 ‘청소년 사역’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맞벌이 부부, 결손 가정 아이들이 여러 과정으로 상처를 받으며 사랑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남양주 화도지역 관내에 중학교가 6개, 고등학교가 5개 있을 정도로 청소년들이 많은데, 많은 아이가 방치되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임 목사를 비롯한 힘찬교회 성도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뜻깊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이 찾은 답은 ‘밥’이었다. 곧장 읍장과 복지과장을 찾아가 면담을 진행했고, 읍청사 광장에서 청소년 밥차를 운영할 수 있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사랑의 밥차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 교회에서 저녁밥과 고기 및 반찬을 만든 후 차량으로 이동해 읍청사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진행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모습인 만큼 청소년들은 처음엔 낯설어했다. 그럴수록 임 목사와 힘찬교회 성도들은 더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다가갔다. 그 결과 긍정적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초창기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방문 청소년 수가 수십 명으로 늘어나더니 지금은 평균 150명이 됐다. 학업 부담이 덜한 금요일이어서 청소년들은 교복을 벗어 던지고 화장을 짙게 한 후 떼를 지어 몰려왔고, 집밥이나 학교 밥보다 더 맛있다며 두세 번 먹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심지어 일부 공격적이었던 청소년들은 사랑의 밥차 활동에 감화돼 금요일마다 텐트 설치와 물건 옮기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적잖은 청소년들을 전도하는 성과도 거뒀다.
차고 넘치는 오병이어의 기적
작은 교회에서 사랑의 밥차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명감’으로 무장은 했지만, 이게 전부가 될 순 없었다. 물리적 뒷받침이 없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요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들이 왔다. 일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 목사처럼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섬김과 나눔의 청소년 사역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었다.
“지역 고깃집에서 고기를 대주기도 하고 피자집에서 아이들 먹이라고 피자를 공급해주기도 했습니다. 뼈다귀 공장에서 감자탕에 쓸 재료들을 공급해 줬습니다. 서울 동대문에 계신 장로님께서는 생닭을 새벽에 보내주셔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주변 교회에 나누고 섬기는 일을 감당하게 됐습니다. 또 빵 가게에서 빵을 아이들을 위해 공급해줘서 늘 차고 넘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밥차는 교회에 선순환 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힘찬교회는 처음엔 읍청사와 상당히 떨어진 시골 교회였는데, 밥차 활동 이후 읍청사 바로 옆에 비어있는 큰 교회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임 목사와 힘찬교회 성도들은 이것이 청소년들을 더 잘 섬기라고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라고 입을 모았다.
격리가 아닌 세상에 파고들어야
임 목사와 힘찬교회 성도들은 특별한 사역관을 갖고 있다. 바로 다음세대 섬김과 세상 속으로의 파고듦이다. 무엇보다 다음세대를 섬겨 바로 세우는 것이 기독교계의 미래를 담보하는 길이라 믿었다. 덧붙여 ‘땅끝 선교지’가 청소년들이고, 사랑의 밥차 활동은 ‘땅끝 선교’와 다름없다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가 더 이상 세상 및 지역사회와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교회가 자신들만의 성을 쌓아두고 세상과 격리된 모습이 아닌 세상에 파고들어 상생하는 교회가 되기를 강조했다.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돼야 한다고 하면서 진짜 땅끝을 찾지 못하고 그 땅끝으로 가지 않는 모습으로 머물 때가 많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기존 목회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고 주님이 원하시는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물줄기가 살아서 큰 강을 이룰 수 있듯, 생태계로 따졌을 때 서로 상생하는 건강한 지역교회, 연합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남양주=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