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열풍이 라면에도 통했다. 지난해 10월 나온 하림의 ‘더미식 장인라면’이 동남아시아에서 이른바 ‘이정재 라면’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시 직후부터 베트남 싱가포르 캄보디아 등에서 제품 문의와 발주 요청이 잇따랐다. 하림 관계자는 “지난달에는 장인라면을 2대의 컨테이너에 가득 실어 말레이시아에까지 수출했다”고 전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라면의 인기는 뜨겁다. 오징어게임, BTS 등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진 데다 한국 제품이 ‘프리미엄’으로 여겨지면서 현지 제품보다 2~3배 비싼 값에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시아 라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발 빠르게 공략에 나섰다.
10일 라면업계에 따르면 하림은 올해 상반기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필리핀에 장인라면을 수출했다. 하림 관계자는 “올해 들어 수입 요청 문의가 더 늘었다. K라면 시장이 연평균 14% 이상 성장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교민이 아닌 현지인 대상으로 수출한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 “하반기에는 북미지역과 오세아니아, 유럽 국가와 일본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의 라면 사랑은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의 연간 1인당 라면소비량은 지난해에만 87개로 1위다. 한국은 73개로 2위, 네팔이 55개로 3위를 차지했다. 베트남의 연간 1인당 라면소비량은 2019년 55개, 2020년 72개다. 매년 늘어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최근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베트남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식보다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는 흐름도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힘입어 동남아시아 라면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베트남 라면 시장의 규모는 2019년까지 54억4000만개로 세계 5였지만 2020년 70억3000만개, 지난해 85억6000만개로 3위까지 올라섰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국가별 시장 규모를 살펴보면 인도네시아가 2위(132억7000만개), 베트남이 3위(85억6000만개), 필리핀이 7위(44억4000만개), 태국이 9위( 36억3000만개)에 이름을 올렸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쓴 것이다. 한국의 시장 규모는 37억9000만개로 세계 8위다.
기업들도 시장 포화상태에 이른 한국을 벗어나 동남아시아로 달려가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2017년 말레이시아 대표 식품기업 ‘마미더블데커’와 합작법인 ‘신세계마미’를 세웠다. 2018년 현지에서 선보인 ‘대박라면’은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 2600만개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20년 중국 싱가포르 태국 등의 아시아 지역으로 판매국가를 넓혔고, 지난해에는 미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나 등 17개국으로 판매망을 늘렸다. 대박라면은 지난해 이마트 노브랜드에 입점하면서 한국으로 역수출되고 있기도 하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K-컬쳐, K-푸드가 확산되면서 한국식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의 청년층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식 매운맛을 즐기는 게 일종의 ‘챌린지’처럼 유행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출시할 때 선을 보인 ‘대박라면 김치찌개 맛’과 ‘대박라면 양념치킨 맛’에 이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불리는 부트 졸로키아를 넣은 ‘대박라면 고스트 페퍼’가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비싼 가격도 문제되지 않는다. 대박라면의 가격은 4.2~5.8링깃(1184원~1635원)으로 말레이시아에서 판매되는 일반 라면보다 2~3배 비싸다. 장인라면도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소비자가격(2200원)보다 비싸게 팔릴 예정이다. 동남아시아·대만 최대 이커머스인 쇼피코리아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은 K-푸드를 ‘프리미엄’으로 인정할 만큼 제품 신뢰도가 높다. 판매할 때 한국 제품임을 강조하고 K-콘텐츠에 노출된 적이 있는 제품이라면 관련 이미지나 영상을 첨부하면 판매량이 오른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