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육체의 가시를 안질 또는 간질이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이 질병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를 사탄의 사자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고후 12:7)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그를 작고, 약하고,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간절한 기도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응답해 주십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가진 육체의 질병을 없애주시지는 않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 은혜가 족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질병이 그저 육체를 힘들게만 하는 고통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고통이 은혜를 담는 그릇이었음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가시를 없애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가시를 통해 더 큰 은혜로 복되게 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크십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139:17)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의 고통을 없애주시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왜 그가 가진 육체의 고통을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울을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바울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그의 삶에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에 육체의 가시를 허용하시면서 그 고통을 덮고도 남을 만큼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모든 문제를 덮고도 남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누릴수록 성도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누릴수록 겸손해집니다. 바울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학문과 율법은 결코 생명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바쳤고 그 결과 초대교회 최초의 공식 선교사로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열매들을 거두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한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자신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면 나는 낮아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둘째,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면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이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또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의 삶을 인도하실 것을 소망하기에 더욱더 기뻐하면서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광야와 사막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도 있고 마른 뼈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겠지만 그것이 도리어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아픔과 약함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 아픔과 약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조건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참 가슴 벅찬 일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헌신하고 충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더 수고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수고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가 강력히 임했는데도 나에게 헌신과 충성이 없다면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더욱 더 수고해야 합니다. 노아의 삶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은혜를 입은 노아는 이후 무엇을 했을까요? 그는 방주를 만들고 홍수를 대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죄에 대한 회개를 선포하여 의를 전파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는 사명이 분명해집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푯대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질병이 있었지만,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라고 고백하며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오직 주의 복음을 전하는 데 바쳤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약함은 죄가 아니라 은혜의 도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묻어두길 원합니다. 그래야 끊임없이 우리를 고발하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묻어두지 말고 포장하지 말고 주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마음으로 입술로 고백하며 빛 되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주님 앞에 내어놓는 순간, 약할 때 강함 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간절히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여러분 모두가 다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황덕영 새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