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약제 장기간 복용땐 부작용
신약, 비급여 최대 1800만원 달해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활발
여러 종류의 면역세포 활성 효과
신약, 비급여 최대 1800만원 달해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활발
여러 종류의 면역세포 활성 효과
28세 여성 A씨는 25년 넘게 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다. 살아온 인생의 거의 전부를 만성 피부질환의 굴레에서 보낸 셈이다. 어릴적부터 안 받아 본 치료가 없을 정도지만 잠깐 증상이 좋아지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직장인 남성 B씨(27)도 초등학교때부터 20년간 같은 고통을 겪어왔다. 새로 나온 생물학적 치료제는 비싼 비용 때문에 써 볼 엄두를 못냈다. 아토피피부염을 앓는 성인들이 적지 않다. 소아기에 발생해 어른까지 이어지거나 성인기에 새로 생기는 사례도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세 이상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2017년 40만2938명에서 지난해 52만3840명으로 늘었다.
완치 기약없고 기존 약제 한계
중등도(중간 정도) 이상 아토피피부염은 완치가 어렵고 약 사용을 중단하면 다시 증상이 나타나는 ‘리바운드’ 현상이 흔해 언제 치료가 끝날지 기약이 없다. 게다가 1차 치료에 쓰이는 전신 스테로이드제와 면역 조절약은 장기간 남용하면 콩팥 독성, 혈압 상승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치료를 거부하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이끌리는 경우도 많다.
근래 아토피피부염을 유발하는 면역 경로의 특정 부분만 차단하는 기전의 신약들(생물학적 치료제, JAK억제제)이 개발돼 중증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길이 열렸다. 문제는 이들 신약들을 비급여로 투약할 경우 연간 약값이 750만~1800만원에 달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산정특례가 적용되면 본인 부담이 10%로 줄어들지만 대상자 선정 기준이 까다롭고 만성 중증 환자들에게만 해당된다. 게다가 신약 역시 잠재적 부작용 발생 우려가 제기되고 일부 환자는 주사제에 대한 두려움, 잦은 병원 방문의 번거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새로운 아토피피부염 치료제가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탯줄혈액(제대혈)이나 골수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중간엽 줄기세포’로 아토피피부염을 치료하려는 새로운 개념의 임상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장기나 조직을 재생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미래 ‘재생의학의 꽃’으로 불린다. 특히 중간엽 줄기세포는 몸 안에 자연적으로 있던 성체 줄기세포여서 어느 정도 증식한 후에는 멈춰 부작용이 적고, 쓸모있는 세포·조직만 전문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중간엽 줄기세포로 개발된 치료제 4종(골관절염, 급성 심근경색, 크론성 누공, 루게릭병 치료제)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 아토피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임상시험은 모두 9건(강스템바이오텍 4건, 이에이치엘바이오 3건, 에스씨엠생명과학 2건)이다. 해외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개발과 관련해선 한국이 전 세계 선두 주자인 셈이다.
이들 중 단계가 가장 앞서 있는 게 중등도 이상 환자 대상 임상 3상시험이 진행 중인 강스템바이오텍의 ‘퓨어스템-에이디주’다. 탯줄혈액에서 뽑은 중간엽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해 주입하면 염증성 사이토카인(면역 매개 물질) 및 항원을 인지해 다양한 면역 조절 인자를 분비하는 원리다. 이를 통해 아토피피부염 유발에 관여하는 여러 종류의 면역세포 활성을 다각도로 조절함으로써 아토피 증상을 효과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으로 선행 임상(1·2상)연구에서 확인됐다.
2018년부터 순천향대 부천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국내 21개 의료기관에서 임상 3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앞서 20대 아토피피부염 환자 A씨와 B씨도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번 임상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상시험 참여, 또 하나의 기회
하지만 아토피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하지만 긴 유병 기간 동안 여러 약물 치료를 이어간 환자들은 임상시험 약에 대한 불확실성과 임상 참여를 위해 약을 중단하는 기간, 위약(가짜약) 투여 등으로 겪게 될 가려움증의 악화를 우려해 임상 참여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줄기세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주저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에 대해 무료로 진행되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난치성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약을 더 일찍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임상시험에 참여한다면 또 하나의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등장을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다.
퓨어스템-에이디주 임상 3상시험 총괄 조정자인 박영립 순천향대 부천병원 피부과 교수는 11일 “임상시험이라는 단어 자체가 환자들에게 낯설고 두려울 수 있어 참여를 권할 때 간혹 긍정적이지 않은 분들도 있다. 반면 환우회에서 임상시험 관련 소식을 접하거나 지하철 광고를 보고 환자들이 먼저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며 “최근에는 임상시험 정보들을 실시간 업데이트하고 설명해 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나와 환자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병원에선 지금까지 9명의 환자가 임상시험에 등록했다.
참여자들은 전반적으로 아토피피부염의 중증도를 측정하는 EASI 점수에서 일정 부분 호전을 보여 피부의 홍반, 태선화(피부가 두꺼워짐), 각질이 줄었고 삶의 질 측면에서도 이점을 보였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그는 또 “아토피피부염 환자 중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자는 기존 치료에 3개월 이상 반응이 없는 중증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약 5% 미만 환자만 혜택을 받는 실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태가 중등도 이상만 되더라도 환자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참을 수 없는 가려움과 만성 아토피 병변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이런 중증 미만의 중등도 환자들에게 주로 임상시험 참여를 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의료원 피부과 안지영 전문의도 “현재까지 20명 조금 안되는 환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했는데, 다수에서 좋은 효과를 보였고 특별히 발생한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관찰된다”며 “피부 병변의 호전이 다른 생물학적 치료제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던 환자들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경과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