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동역서신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남아프리카 에스와티니의 기독의과대학 양승훈(67) 총장이 이달 초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한 300번째 동역서신의 인사말 일부입니다. 양 총장은 1997년 7월부터 이달까지 25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사역 보고 형식의 편지를 써왔습니다.
그가 동역서신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특별합니다. 바로 ‘인생의 터닝포인트’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양 총장은 물리학도로 25년 가까이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대학에서 창조론과 기독교세계관을 접하면서 또 다른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안정된 직장이었던 경북대 정교수직을 내려놨습니다. 이후 기독학자들의 모임인 기독세계관학술교육동역회(DEW)의 파송을 받아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을 설립·운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동역서신은 그가 ‘캐나다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던 때 쓰기 시작했습니다.
양 총장은 창조론과 기독교세계관 분야에서 유명한 인사입니다. 이들 분야에서 강의와 글을 통해 많은 기독 지성을 키워내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시련도 있었습니다. 창조과학회 창립 멤버였던 그가 이 단체와 결별한 것입니다.
그는 한 신학교 요청으로 창조론 강의를 맡아 연구하던 중 창조과학회가 고수하고 있는 ‘젊은 지구론’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어 ‘오랜 지구 창조론’ 쪽에 서면서 창조과학회로부터 제명을 당했습니다. 젊은 지구론은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보는 반면, 오랜 지구 창조론은 일반 과학계에서 통용하는 지구(45억년)와 우주(138억년)의 나이를 인정합니다.
양 총장은 지난달 한국에서 열린 그의 저서 ‘창조론 대강좌 완간 기념회’에서 “지구연대 문제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며 “학문적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베풂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8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장에서 정년 퇴직한 그는 에스와티니 기독의대 3대 총장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물리학도에서 창조론·세계관 교수로, 다시 의과대 총장으로 ‘제3의 인생’을 출발한 것입니다. 이 대학은 2013년 한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대학이면서 에스와티니의 처음이자 유일한 의과대학입니다. 그는 “에스와티니는 전 국민의 약 30%가 에이즈 환자인 나라”라며 “전 세계에서 가장 감염률이 높아 의과대학의 존재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합니다.
세간의 시선에서 보면 양 총장이 걸어온 인생길은 갈수록 좁고 불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역서신에 빼곡하게 적힌 각종 사역 소식을 읽고 있노라면, 그는 오히려 좁은 길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는 기도요청란을 볼 때마다 왜 동역서신인지 깨닫게 됩니다. 벌써 301호 동역서신이 기다려집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