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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국가 비상사태



국가 비상사태는 천재지변이나 전쟁 위기 등으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위협받을 때 대통령이 선포한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권한을 마구 휘두르는 예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12월 6일 처음 선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중공(중국)의 유엔 가입을 비롯한 국제 정세 급변으로 북한의 남침 위협이 커졌음을 이유로 들었으나 사실은 대학생들의 교련 반대 및 부정부패 척결 시위 등 반정부 투쟁을 진압하기위한 조치였다. 공화당은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법’을 밀어붙여 향후 유신독재의 기반을 마련했다. 동맹국 미국이 북의 남침 위협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반대할 정도였다.

이런 미국에서도 비상사태 남용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남북전쟁과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대공황 등 위급한 시기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으나 연방대법원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오늘날의 비상사태는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y Act)을 근거로 선포된다. 새천년 들어 가장 논란이 컸던 사례는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국경 장벽 설치용 비상사태다. 멕시코와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마약 거래, 폭력, 인신매매가 미국 침략 행위라며 주한미군 주둔비까지 이 곳에 쏟아부었지만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 행위라는 비난을 받았다.

40여년 만의 고물가 사태로 중간선거 패배 위기에 몰린 조 바이든 대통령도 ‘비상사태의 유혹’을 떨치기 힘든 모양이다. ‘바이드노믹스’를 대표하는 기후 관련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이 상원에서 좌초되자 ‘기후 비상사태’ 선포를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백악관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며 군불을 때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당장 국가 안위를 위협할 상황은 아닌 만큼 트럼프의 장벽 설치용 비상사태만큼이나 논란 여지가 많다. 대통령이 해외로 도피할 정도로 고물가에 따른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스리랑카 정도는 돼야 국가 비상사태 요건에 맞는 것 아닐까.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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