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시편 120~134편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예배드리러 가는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올 때와 갈 때 반드시 찬양을 드리며 출입해야 합니다. 성경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전에 들어가서 그분에게 감사하며 그분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라고 말합니다.
눈물의 파종을 하는 자는 기쁨의 열매를 거둡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바벨론 제국에게 망한 후(BC 588년) 49년이 지나고, 50년째(희년·히브리어로 ‘요벨’)인 BC 538년 신(新) 제국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해방됐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인 BC 518년 예루살렘 성전이 기공돼 70년 만에 성전이 회복됐습니다(렘 25:12).
이스라엘이 시온의 포로에서 해방될 때 그들은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그들의 혀에는 찬양이 가득 찼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큰일로 인해 기쁨이 가득했습니다(시 126:1~4). 마치 찬송 550장 2절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 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 같이 누리겠네”라며 찬양한 모습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나라와 교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에 반드시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성도 여러분, 많이 울수록 더욱 큰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눈물을 점검해 봅시다. 저는 40년 전 미국에 가기 전 한국교회에서 새벽 제단마다, 금요철야기도회마다 눈물바다를 이루며 기도했습니다. 이민교회에서도 많은 눈물이 있었습니다. 회개의 눈물,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 감동의 눈물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이런 눈물이 메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침상과 담요를 적시면서 기도했다고 간증합니다(시 6:6). 시편 56편 8절에 그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당신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 눈물이 하나님의 병에 담길 만큼 흠뻑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눈물의 병”(the bottle of tears)이 기원했다고 합니다. 1753년 설립된 대영제국박물관에 가보면 중세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귀족들이 보관한 ‘눈물의 병’들이 전시된 것을 보았습니다. 주로 집안의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 장례 때 흘린 눈물들을 보관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열일곱 살 때부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자식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른두 살 때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음은 어머니의 눈물 때문이었다고 훗날 고백했습니다. 삼각산에서의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회,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의 회개기도, 부흥회 때 가진 통성기도 등 한국 성도들은 많은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우리 모두 계속해서 자식을 위해,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전도와 선교를 위해 눈물을 흘립시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한 여인처럼(눅 7:38), 다시금 눈물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윤사무엘 목사(인천 겟세마네교회)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에 있는 겟세마네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평남 노회에 속해있습니다. 15개국을 상대로 교육 선교를 시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