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만 150권이 넘는 사도신경 주해서나 해설서가 나왔다. 매년 4~5권이 나온 셈이다. 김진혁(47)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가 최근 낸 사도신경 해설서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복있는사람)’는 기존 책들과 어떻게 다를까. 저자인 김 교수에게 만남을 제의했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숱하게 나온 사도신경에 관한 책 중 하나”라며 계면쩍어했다.
실제 책을 읽은 뒤엔 2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가 태생적으로 겸손하거나 자기 책의 가치를 모른 척하거나. 최근 서울 서초구 우드베리연구소에서 만난 김 교수는 “초기 기독교와 사도신경, 선교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답을 찾아갔다”며 “당시 사람들은 성경도 없이, 교회도 없이 선교했는데 그때 신앙의 뼈대가 된 게 사도신경의 초기 형태”라고 소개했다.
책은 그가 지난해 기독교-이슬람 관계 전문 연구기관인 우드베리연구소(소장 김아영)에서 ‘선교 현장을 위한 기독교 교리 해설’이란 제목으로 선교사 대상 연속 강의한 것을 엮은 것이다. 김 교수는 “원시 그리스도교 성립기부터 초기 교회의 신앙이 정착된 4~5세기까지 자료를 중심으로 사도신경을 조명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다양성 속에서도 원초적 통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책은 사랑을 키워드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접근한다. 그는 “삼위일체론이 난해한 교리로 여겨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비를 신학적 개념과 논리로 설명하기 때문”이라며 “더 근원적인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의 교제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에서 보듯 삼위일체론이 우리를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사랑과 기쁨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미 5세기 초에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들을 사랑하는 성부 하나님,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성자 하나님, 이들의 관계를 풍성히 하는 사랑의 끈 혹은 열매로 성령 하나님을 설명했다”고 했다.
저자가 기쁨을 누리는 매개자로 성령을 그리면서 이 책은 조직신학자의 딱딱한 사도신경 주해라는 통념을 거의 비껴간다. 유한한 시간에 속한 인간은 영원에 있는 하나님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제할 수 있다. 사랑의 역동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칼 바르트 성령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사도신경 구절을 물었다. 망설임 없이 답했다. “원문 맨 앞에 나오는 ‘나는 믿습니다(라틴어 Credo in Deum)’다.” 의외의 답이었다.
“유학 시절 영국 성공회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나는 믿습니다’고 하는데 문득 그 고백이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며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믿는다는 것의 뜻을 찾으며 산다. 그리스도인이면서(Being), 그리스도인이 돼 가기 위해(Becoming). 삶 속에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 자체가 고귀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제1 명제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이다.
저자는 이를 압축한 사도신경을 유려하면서 지적인 오늘의 신앙 언어로 풀이한다. 그는 이 책이 성경과 삶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 “칼 바르트가 한 손엔 성경, 다른 손엔 신문을 들라고 했다고들 한다. 실제 그런 말을 했다는 확인은 안 된다(웃음).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말씀과 현장을 매개하는 게 필요한데 이 책이 그렇게 사용되면 좋겠다”고 했다.
책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사람, 성령과 교회, 죄 사함, 종말 등 6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에는 적용을 위한 흥미로운 질문들이 있다. 질문 중에는 ‘왜 사도신경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없을까’ ‘성령을 믿는 것과 교회를 믿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등이 있다. 독자는 각 장 말미의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내려가면 더 재미있게 본문에 빠져들 수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