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지금까지 모호했던 것이 온전히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마치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이전에 감추어졌던 무언가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밝혀지는 순간이 있지요. 때로 그 순간은 개인의 일생을 결정짓고, 학문과 예술의 차원을 변화시키며 역사의 방향까지 뒤바꿉니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계시’라고 말합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저를 향한 하나님의 노크 같은 것이 극적인 위기의 순간에 번쩍하고 찾아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주일 예배 시간이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지하 2층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던 청년들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저곳 찢어진 텐트같이 너덜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지친 몸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유학생들과 함께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곤 했습니다.
그 몇 해 전,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 보스턴에 교회를 개척하고 몇몇 일로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려고 뉴욕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문 앞 도로를 지날 때 저와 아내, 네 살 아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버스에 한꺼번에 치일 뻔했습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셋이 손을 잡고 온 힘을 다해 가까스로 버스를 피한 뒤 넋을 잃은 와중에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찬 아빠, 우리 바로 이곳에 교회를 세울 것 같아….” 그때는 아내가 완전히 얼이 빠진 상태라서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여보, 우리 교회는 보스턴에 있어. 정신 차리고 어서 올라가야지.”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나중에 맨해튼 바로 그 빌딩 안에 교회가 세워지고 한창 왕성하게 청년들을 목양하던 어느 날, 문득 그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말씀처럼 이 일이 예비돼 있었던 것인가 싶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행 18:9~11)
저는 그날 혹시 하나님이 준비하신 계시, 즉 ‘번쩍하는 순간(Luminous Moment)’이 저희 식구가 털썩 주저앉은 빌딩 앞에 임하셨던 건 아닐지 조심스레 회상해 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시는 주님께서 그날 그 거리에서 나에게 찾아오신 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도 바울의 고백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북아프리카 구레네에 살던 시몬의 꿈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의 꿈이 이루어져 예루살렘에 당도한 그에게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를 잠시 그의 등에 맡기시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때로 살아가며 주님께서 십자가를 맡기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두 가지일 것입니다. 아니면 받아들이면서도 억지로 아니면 기꺼이, 그렇게 두 가지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인생 순례길을 뒤흔드는 그 십자가가 내게 다가올 때 그 형언할 수 없는 울림 앞에 나는 마구 떨려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송용원 교수(장로회신학대 조직신학)
◇송용원 교수는 장로회신학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칩니다. 이 글은 최신작 ‘사이에서’의 제4장 ‘울림과 떨림’의 원고를 기초로 했으며, 지난 24일 미국 뉴저지초대교회 주일예배에서 나눈 설교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