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유산 기부와 관련된 이야기 중 유명한 에피소드는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일 것이다. 유산 문제의 해법을 묻는 이에게 예수님은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되물으면서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다.
농사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갑부가 된 이가 있다. 그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다짐한다. 세상의 기준에선 크게 문제될 게 없는 대목이다. 한데 성경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로 규정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는 이 땅에서의 삶이 유한함을 모르고 있어서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부르면 지상의 부귀영화는 쓸모를 잃는다. 이 밖에도 비슷한 의미를 띤 성경 구절은 한두 개가 아니다. 고린도전서 7장 31절엔 이렇게 적혀 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돈은 누구의 것인가
국민일보와 ㈔월드휴먼브리지가 공동으로 벌이는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세아기) 캠페인의 취지 중 하나는 크리스천의 자선 문화를 재고해보자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최근 국내 신학자 3명(유경동 감리교신학대 교수,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전 총장, 장동민 백석대 교수)을 상대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크리스천에게 돈과 기부는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소개하기로 했다. 신학자들이 가장 먼저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물질’에 관한 성경적 관점이었다.
성경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이다. 장 교수는 청지기 정신을 이렇게 요약했다. ①하나님은 인간에게 재능과 재물과 시간을 줬고, 인간은 이것을 집사처럼 관리해야 한다. ②청지기는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게 되는데, 이때는 주인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 이 같은 메시지가 세상에서 기업가 정신이나 복지사회의 이념이 됐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물질을 대하는 크리스천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디모데전서 6장 7~8절 말씀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임 전 총장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주님이 맡긴 물질을 그분의 뜻대로 잘 사용하면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적 순종과 지혜가 동반돼야 한다. 물질의 사용은 매우 영적인 행위”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만물의 시작이 하나님이니 피조 세계 역시 하나님의 소유물”이라며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뭔가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경에선 물질의 소유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기독교에서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은 물질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며 탐욕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니”(고후 5:18)라는 말씀을 되새기면서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게 신학자들의 견해다. 장 교수는 “돈에는 공적 성격이 있다”고 했고, 임 전 총장은 “돈은 이 시대의 가장 위협적인 우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선은 소유의 그릇을 비어내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유산 기부는 최후의 신앙 고백”
오래전부터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복지 분야 활동을 벌이는 곳의 60% 이상이 교회 혹은 교회 관련 단체들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유산 기부는 여전히 한국교회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일부 교회가 과거 유산기부 캠페인을 벌인 적은 있으나 성과는 미미했던 편이다.
그렇다면 유산 기부가 갖는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 임 전 총장은 “유산 기부는 법적으로는 물질의 주인이 우리라고 하더라도 실제 주인은 하나님임을 밝히는 고백과도 같다”며 “그런 의미에서 유산 기부는 신앙인에게 최후의 신앙 고백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언젠가부터 유행하는 ‘웰빙’의 문화를 언급하면서 한국 사회가 ‘잘 사는 것(well)’에만 집중한 나머지 ‘존재의 의미(being)’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유산 기부는 유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다. 이런 정신이 유산 기부 문화의 척도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키워드는 ‘나눔’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생겨난 것을 안다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빚진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람들과 나눠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근본 원리다. 기독교의 근본 진리인 ‘오직 은혜’의 사상을 믿는다면 우린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눌 수밖에 없다.”
특별취재팀=박지훈 최경식 신지호 기자 조재현 우정민 PD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