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제비다방의 추억



커피를 좋아하던 시인 이상이 북촌 한가운데 ‘제비다방’을 열었던 때는 1933년이었다.

양부였던 큰아버지가 1932년 세상을 떠나면서 이상에게도 약간의 유산을 남겼고, 유산을 받은 이상이 1933년 7월 청진동의 한 건물에 연 다방이 바로 ‘제비다방’이었다. 건축가였던 이상은 통유리를 통해 거리와 소통이 가능한 모던한 모양으로 건물을 꾸미고, 벽에는 그가 좋아하던 프랑스 소설가 주르 뢰나르의 에피그램 액자 몇 개를 걸었다.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은 주르 뢰나르의 책 ‘박물지’에 실린 제비 이야기, 그리고 이를 표현한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제비 삽화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나르는 20세기 초 프랑스를 대표하는 후기인상파 아방가르드 화가로서 프랑스에 일본 미술을 알리고, 스스로도 일본풍의 그림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1894년 발표된 ‘홍당무’라는 작품으로 당시 문화계에 잘 알려져 있던 뢰나르는 커피 마니아였다는 점에서 이상을 닮은 면이 있었다. 그의 작품 ‘홍당무’만큼 유명한 그의 말 “게으름은 피곤해지기 전에 쉬는 습관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는 당시 다방에서 소일하던 ‘고등룸펜’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연인 금홍과의 사이도 악화됐고, 건강도 나빠져 가던 1935년 여름 이상은 평안남도 성천으로 요양을 떠났다. 이곳에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수필이 바로 ‘산촌여정’이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매일신문’에 ‘성천기행 중의 멧절’이라는 부제와 함께 1935년 9월 27일부터 6회에 걸쳐 연재했다. 첫 번째 글의 시작은 이렇다.

“향기로운 MJR의 미각을 니저버린 지도 이십여 일이나 됨니다.” 이상이 커피를 즐겼다는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글이다. 여기에 나오는 MJR은 미국의 거대 원두 기업 MJB의 오기였다. ‘제비다방’은 개업 2년 만인 1935년 9월에 문을 닫았다. ‘제비다방’을 함께 운영하던 연인 금홍도 떠난 상태였다. 이후에도 이상은 카페 ‘쯔루’ ‘맥’ ‘69’ 등을 차리거나 인수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1936년 일본으로 떠난 이상은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상이 제비다방을 차리기 10년 전이던 1923년에 제비는 기상청에 의해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봄의 도래를 알리는 지표동물로 등록됐다. 그런데 이제 100년 만에 제비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지표동물의 지위를 잃게 된다는 소식이다. 기후 변화로 제비는 3월이 아니라 5월이 되어야 돌아온다. 게다가 귀소 본능 따라 돌아오는 제비 개체 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서울에 제비가 나타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인간이 제비를 쫓아낸 것인지, 제비가 인간을 피한 것인지 알 수없지만 연인을 잃어버린 것처럼 괜스레 슬퍼진다.

몸이 아픈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제비들도 돌아오지 못하는, 봄이 없는 한반도가 되어가고 있다. 환경을 보전하는 일은 제비의 봄을 붙잡는 일이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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