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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독일 9유로 티켓



한 달에 만원 정도로 전국 대중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독일에서는 실제로 가능하다. 한 달에 9유로(약 1만2000원) 티켓을 사면 고속철을 제외한 전국의 기차, 전철, 버스 등을 마음껏 탈 수 있다. 베를린 대중교통 월 정기권이 86유로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6월 도입된 후 전체 인구(8400만명)의 37%가량이 이 티켓을 구입했다.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독일 휘발유 값은 5월 ℓ당 2.36달러에서 6월 1.99달러로 하락했다. 물가 상승률도 꺾였다. 5월 7.9%(전년 동월 대비)로 1974년 이후 48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6월에는 7.6%로 소폭 낮아졌다. 독일 통계청장은 “9유로 티켓과 유류세 인하가 6월 물가 진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가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가운데 독일은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물가 상승세를 진정시켰다. 고유가 대책으로 유류세 인하에만 매달리는 대부분의 나라와 차이점이다.

9유로 티켓은 서민층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과 함께 탄소중립 효과까지 보고 있다. 당초 이 티켓을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독일은 그 이후를 논의하고 있다. 대중교통 할인 상시화다. 하루 1유로, 연 365유로로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후 티켓’ 도입이 거론된다.

최근 우리 대통령실이 발표한 ‘국민제안 톱10’ 중에 비슷한 아이디어가 있다. 한 달 9900원으로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K-교통패스’(가칭) 도입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아주 매력적인 정책이다. 온라인 국민투표 결과 별다른 논란 없이 톱 10 중 득표수 2위에 올랐다. 하지만 가뜩이나 적자에 시달리는 지하철이나 버스 업계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도입하기엔 재원 마련 등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K-교통패스가 고물가를 해결할 창의적인 정책이 될지, 재정에 부담만 주는 아이디어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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