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투더 영 투더 우!” “동 투더 그 투더 라미! 하!”
인사하는 행위 하나가 전 세계 온·오프라인을 넘어 ‘밈(meme·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패러디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명 ‘우영우 인사법’이다. 종영을 앞두고 연일 신드롬을 낳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매회 등장만으로 시청자들을 미소 짓게 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와 그의 절친 동그라미(주현영 분)가 만날 때마다 주고받는 인사 모습이다.
랩 하듯 경쾌하게 읊조리는 서로의 이름과 무심한 표정으로 취하는 제스처. 유쾌함의 옷을 차려입은 이 인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번에 각인시키는 장치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와 그의 유일한 친구 동그라미 사이에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더불어 극 중에서 두 사람이 소위 ‘찐친(진짜 친구) 모멘트’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시청자들을 무장해제시킨다.
법과 법정에 선 사람들을 다루는 작품들엔 정의롭지 못하고 비윤리적이며 때론 상식의 틀을 벗어나 납득조차 되지 않는 캐릭터들이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우영우에 몰입할 채비를 마친 시청자들에겐 갖가지 파도를 헤쳐 나가기에 충분한 ‘고래 같은’ 조력자들이 준비돼 있다.
우영우의 미래를 응원하는 든든한 선배 정명석 시니어 변호사(강기영 분), 로스쿨 시절부터 우영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고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기들로부터 방패막이 돼 준 최수연 변호사(하윤경 분), 훈훈한 외모에 다정함과 배려심까지 갖추고 필요할 때마다 우영우의 지원군이 돼주는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 분)가 그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절묘한 케미스트리와 티키타카는 각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사회를 희망으로 물들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드라마가 높은 관심을 받으면서 ‘캐릭터와 이야기의 허구성’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실제로 우영우 변호사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는 현실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우영우는 지능지수(IQ) 164에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으로 묘사된다. 특정 분야(암기, 관찰력 등)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과 전형적인 자폐증 증상이 결합한 형태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 중 1% 미만에게만 나타날 정도로 드문 일이다.
대중이 우영우의 능력치보다 더 비현실적이라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관계다. 우리 사회에 자기 유익을 내려놓고 이토록 헌신적, 지속적으로 주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친구’가 있었던가에 대한 ‘웃픈’ 방증이다. 수년간 취재 현장에서 만난 희귀난치성 장애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단 한 번도 “마음을 나누는 비장애인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현실이다.
육아 휴직 시절, 아이를 학교와 학원으로 데리러 가고 오는 길목에서 짧지만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기지 못한 친구를 위해 슬며시 자기 우산의 반쪽을 내주는 모습, 시험에서 여러 문제를 틀려 잔뜩 풀이 죽은 친구 손을 잡고 말없이 걸어가는 모습 등이다.
디온 워릭이 스티비 원더, 엘튼 존과 함께 불러 전 세계적 사랑을 받은 곡 ‘댓츠 왓 프렌즈 아 포(That’s what friends are for)’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나는 영원히 네 편이 될 거야.’ 제대로 마음을 섞은 친구 사이에서야 나올 수 있는 “친구 좋다는 게 뭐야”란 말이 떠오르는 가사다.
두 손 꼭 잡고 같은 길 걸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건 거대한 축복이다. 많은 이들이 머리가 커가면서 핏줄보다 더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친구라는 걸 체험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건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일이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란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 건 그만큼 깊이 있는 신뢰가 켜켜이 쌓인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신뢰는 고난을 기꺼이 함께 겪어나가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생긴다. 그리고 그 결심의 바탕은 사랑에 있다.
성경은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라고 기록한다.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의 출발선에 서는 크리스천들이 ‘친구’란 이름으로 곁을 지켜나갈 때 사람들은 핏줄보다 더 진한 ‘형제’를 얻고 비현실은 이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