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에서 100여m 거리에 있는 홈리스복지센터 1층.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 청장년국 가스펠 두나미스교구 사회사업실(실장 남보라 성도) 청년 10여명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하얀 비닐봉지에 밴드 연고 파스 감귤주스 등을 넣고 있었다. 인근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에게 나눠줄 물품이었다. 1시간도 안 돼 300개가 넘는 선물 꾸러미를 쌌다.
장사무엘(36)씨는 “생신을 맞은 쪽방촌 어르신을 가가호호 방문해 생일 축하 케이크를 나누고 대화를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이렇게 물건을 나눠 드리는 거로 대신한다”고 했다. 장씨 등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선물 꾸러미를 실어 나른 곳은 홈리스복지센터에서 30m가량 떨어진 공터였다. 공터에서 1시간 정도 찬양 공연을 한 뒤 나눠줄 거라고 했다.
공터 가운데는 키보드 등 공연 장비가 설치됐고 간이의자 50여개가 깔려 있었다. 기독교문화단체 수상한거리(대표 백종범) 정슬기(29) 간사는 “지난달엔 더위 때문에 한 차례 공연을 쉬었는데 오늘 오니 노숙인과 주민들이 ‘기다렸는데 왜 안 왔냐’고 물으셔고 미안하고 고맙더라”고 했다.
청중들은 하나둘 도착했다. 한 노숙인이 다른 노숙인을 손짓하며 불렀다. “어서 와. 지금 안 앉으면 자리 없어!” 공연 직전 좌석은 다 찼다. 근처 ‘영등포 쪽방촌 월간 음악회’라는 플래카드 앞에서 수상한 거리 아티스트가 노래를 했다.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객석에서 간간이 “할렐루야” 하는 화답도 나왔다. 어떤 노숙인은 두 팔을 높이 들고 노래에 맞춰 찬양했다. 공연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4~7분 간격으로 지하철 1호선이 덜컹거리며 공터 바로 옆을 지나갔고 머리 위 고가 위로는 자동차가 달렸다. 간혹 술에 취한 노숙인이나 주민이 갑자기 달려들어 마이크를 빼앗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공연이 불가능한 장소로 보였지만 찬양은 1시간 동안 담담하게 진행됐다.
보컬 김인아씨는 공연 중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감사의 문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다. 청중들은 공연 내내 묵상하듯 노래를 음미하며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듯했다. 공연 후 안철수(50)씨는 “마음이 기뻤다. 주변이 시끄러워도 내 마음에 하나님이 있으면 찬송을 부를 수 있고 평강이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구세군 남서울지방 청년부 10여명이 간식 차에서 매실차와 커피 등 시원한 음료를 무료로 나눴다. 노크교회(박찬열 목사) 청년들은 집게로 쓰레기를 주웠다. 한쪽에서는 미용 봉사가 이뤄졌다. 40년 경력을 가진 최성자 두기둥교회 집사는 현장에 온 이들의 머리를 깎았다. 당초 6명에게 봉사하려 했으나 20여명의 머리를 손질했다.
공연이 마무리된 뒤 남보라(33)씨 등 청년들은 준비한 물품을 나눠줬다. 남휘호(25)씨는 고령으로 물건을 들기 힘든 어르신을 위해 물품을 집까지 직접 가져다주기도 했다. 꾸러미를 받아든 70대 어르신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 너무 고마워서 어떡하나”라며 웃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청년들은 2010년부터 매월 한 차례 이렇게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연합사역 중개자역 배우 남보라
“봉사는 다른 사람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
“봉사는 다른 사람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은 연합 사역의 장이다. 먼저 1987년부터 영등포역 인근에 자리잡은 광야교회(임명희 목사)가 있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청년들이 봉사하던 지난 5일 오후에도 교회 인근 공터에서 정선영 부목사가 쪽방촌 성도들과 노숙인 20여명을 대상으로 성경 통독을 진행했다. 광야교회는 청년들의 봉사에 필요한 장소와 장비 등을 지원한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봉사에 여러 교회가 힘을 모으도록 하는 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이자 배우인 남보라(사진 가운데)씨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남씨는 남동생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2016년 한 교역자의 권유로 현재 교구에서 노숙인과 쪽방촌을 돕는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2019년 말 리더를 맡은 뒤 코로나가 왔다. 남씨는 “코로나 이후 3개월간 봉사를 쉬다가 마스크 500장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며 “이후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했고 여러 단체 또는 기업이 라면 장아찌 어묵 냉동밥 등을 후원해, 지금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이 이웃과 나누고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CCM 음악회는 지난해 12월 있었던 크리스마스 캐롤 공연을 계기로 시작됐다. 그는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들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수상한거리’에 제안했고 대표 백종범 목사가 흔쾌히 받아들여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백 목사는 한국구세군 사역팀을 연결했다.
남씨는 “취객 등의 방해가 있으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고맙다’며 손잡아주는 분이 있어 힘을 낸다”며 “예수님이 낮은 자를 향해 가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봉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통 창구”라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