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인체에 유해한지, 무해한지를 둘러싼 논쟁은 매우 오래됐다. 커피가 이슬람의 음료로 아랍 세계에서 처음 탄생한 15세기부터 유럽에서 기독교 음료로 공인된 17세기를 거쳐 누구나 커피를 마시게 된 21세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인류의 궁금증이다.
우리나라에서 커피 유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8년 9월에 벌어졌던 고종 커피 독살 기도 사건 직후였다. 커피를 마시고 황제와 황태자가 쓰러졌으니 당연히 제기될 법한 커피 유해 주장이었다. 잠잠하던 커피 유해론이 다시 일어난 것은 1920년대 후반이었다. 1920년대의 카페 대유행, 1930년대의 다방 창업 열풍이 커피에 대한 경계심을 출연하게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1934년 7월 15일자에 ‘커피를 많이 먹으면 자식이 귀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실었다. 독일에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카페인을 많이 섭취한 쥐의 생식기가 고장났다는 연구 결과도 인용했다. 매일신보가 커피 과다 섭취는 소화불량, 변비, 불면증을 가져온다고 경고했던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27년 11월 3일자 기사였다.
미국에서 커피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붐을 일으킨 것이 1920년대였다. 그 결과가 발표되자 국내에도 더러 소개됐다. 대표적인 것이 사무엘 프레스콧 박사의 연구였다. 전미커피로스팅협회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를 1924년에 발표했는데, 커피는 “성인 대부분에게 안전한” 음료라는 결론이었다. 1932년 4월 28일자 동아일보에는 “많이 먹지 아니하면 커피는 무해하다”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 뉴욕대 생리학자 췌네 박사의 말을 빌려 하루에 150잔 이상을 마시지 않으면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무려 150잔을 기준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어 시카고대 생리학연구소의 연구 결과 취침 전의 커피 한 잔은 수면에 방해를 주지 않지만 두 잔 이상이면 수면 방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그럴듯한 소식이 전해졌다. 커피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는 희소식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커피 유행을 가져온 배경, 커피 유해론 등장 배경 중 하나가 어린이들의 커피 음용이었다는 점이다. 커피가 학업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가 떠돌았고, 이를 믿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어린이들에게 커피를 마시게 했다. 중앙일보는 1933년 4월 3일자 기사에서 “한 잔 커피 중에는 피로를 회복하기에 넉넉한 충분한 영양적 성분이 섞여 있어 노인, 부인, 아동들에게 주면 발육과 보건에 충분한 효과가 있으며 더욱 두뇌를 쓰는 사람, 스포츠맨들에게는 없어선 안될 필수품이다”라고 보도했다.
아이들 두뇌 발달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들은 주저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세계 경제 대공황의 여파를 이겨내고 1930년대 초반에 조선에서 커피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배경의 하나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신체 발달에 좋다, 두뇌에 좋다, 학업에 도움이 된다면 이 땅의 학부모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물며 커피쯤이야.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