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썼습니다. 특히 신앙과 학문, 신앙과 진료가 통합된 삶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서요. 둘째, 스승이 없어 방황하는 젊은 의료인 또는 의료인 지망생들에게 책을 통해 멘토가 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서 따뜻한 위로를 갈망하는 환자들, 또 의사들에게 상처받은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위로와 격려가 되는 책이 되고자 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를 저술한 채영광(45)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종양내과 교수가 밝힌 집필 의도다. 열흘 일정으로 방한한 채 교수를 지난 30일 경기도 성남 분당우리교회에서 만났다.
추천사를 쓴 이찬수 목사에게 책을 건네고 인사한 뒤 기자를 만난 채 교수는 “실제 병실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Can I pray for you?)’라고 묻는데, 이 말이 책의 제목으로 뽑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서, 환자의 손을 잡고’ 하는 기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날마다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랑이 없는 마음에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셔서 아프고 피곤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진료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리는 말기암 희귀암 전문의 채 교수다.
채 교수는 고교 시절 대입 모의고사를 보면 전국 석차가 한 자릿수였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 사랑의교회 대학부에서 활동했고, 공중보건의 병역을 마친 후엔 곧바로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에 합격해 존스홉킨스대, 필라델피아 아인슈타인병원, 휴스턴 엠디앤더슨암센터 등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수련을 받았다. 2014년부터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병원 교수로서 일반적인 의학 치료가 듣지 않는 암환자들을 치료하며 미국 임상 시험 그룹(SWOG)의 초기 임상 시험과 희귀암 위원회 부의장 직함으로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의 그가 책에서 강조하는 건 겸손이다. 채 교수는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겸손, 이 가난한 마음이 없이는 나에게 소망이 없다”고 말한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까지 그는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우쭐해 하고, 잘난 사람을 보고는 우울해 했다고 전했다. 배후엔 엘리트들이 놓지 못하는 자기 사랑, 자기 연민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성경은 이걸 죄라고 말한다. 자기 숭배(Self-idolatry)다”라고 말했다.
자아가 없어진 공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고, 이게 흘러넘치자 채 교수는 비로소 환자들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응답된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진료실은 곧 선교지가 됐다.
수많은 치료법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암은 당신 탓이 아니다’란 위로를 건네고 의사인 자신부터 새로운 치료법을 찾기 위해 끝까지 옆에서 마라톤을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완주할 것을 다짐한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란 물음은 바로 이때 등장하는 것이다. 구원의 서정과 대속의 교리를 설명하는 대신, 육체의 쇠잔으로 지쳐가는 이들에게 함께 생명의 구주를 바라보자고, 옆에서 함께 기도하겠다며 손을 잡는다. 나중에 차트 정리에 시간이 걸릴지라도 진료 중엔 환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게 된다. 논문을 많이 쓰고 신약 특허를 따내는 업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환자의 상태 개선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가는 길, 결국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이 가득한 ‘바보 의사’가 되는 길이다.
채 교수의 연구실은 또한 세계 각지에서 온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제자들이 함께 신앙 서적을 읽고 기도 모임을 하며 간증을 나누는 공간이다. 채 교수는 “질병과 고난, 아픔과 슬픔 속 환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는 내용의 저술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남=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