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그에게 일본은 뭐냐고 묻는다. 반대로 일본인은 그에게 한국은 왜 그러냐고 질문한다. 양국 정치인은 계산된 발언만 늘어놓고, 보수 언론은 일방적 목소리로 갈등을 부추기며, 인터넷 여론은 무책임한 파도처럼 휩쓸려 다닌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독도 문제 등으로 최악의 한·일 관계 속에서 그는 한 사람의 일본인, 한 사람의 한국인에서 시작하는 실존적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이라는 이웃’(동연)을 저술한 서정민(66)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를 지난 2일 서울 마포구의 북카페에서 만났다.
서 교수는 경계인이자 이중 언어 사용자다. 목회자이기도 한 그는 연세대와 일본 도시샤대에서 종교와 문화사를 공부했고, 연세대 신과대학에서 2012년까지 교회사를 가르치다가 지금은 일본 최초의 미션스쿨인 메이지가쿠인대에서 일본 학생들을 가르친다. 책은 일본에서 본 한국과 일본을 이야기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아사히신문이 발간한 월간지 ‘논좌’의 인터넷판에 일본어와 한국어로 동시 게재한 칼럼을 모았다. 일본 주요 언론에서 번역본이 아닌 한·일 양국의 언어로 작성된 칼럼을 장기 연재한 사례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종교학자가 한·일 관계를 비평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한 사람의 친구로부터 시작하는 한·일 관계를 말하며 서 교수는 개인 경험부터 털어놓는다. 1980년대 한국에 유학 온 구라타 마사히코, 한·일 국교 정상화 직후 최초의 일본인 유학생인 목회자 사와 마사히코, 이들을 인도한 재일동포 인권운동가 이인하 목사, 민주화의 등불이었던 ‘T·K생’ 지명관 교수, 기독교 사회운동가 오재식 박사와 김관석 목사, 이들을 도운 쇼지 츠도무 목사와 출판인 모리 헤이타,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한국인 전도자들의 끼니를 대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 부부, 한국 고아들의 아버지이자 양화진 묘역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 소다 가이치 부부까지. 한국과 일본 역사 속에 영원히 기록될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말할 때 정자와 정원을 이야기한다. 한국은 자연으로 나아가 정자를 짓고 야외에서 절경을 감상하는 데 반해, 일본은 자연을 집 안으로 가져와 아담하게 정원으로 즐기는 상반된 문화다. 여기서 서 교수는 종교 이야기로 점프한다. 자연을 내 집 방안으로 들여오기 위해 비틀고 묶는 등 전력투구해 만드는 분재에서 보듯, 일본은 노력 없이 거저 얻는 은총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고 전한다. 아무 공덕 없이 주어지는 은혜는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타력 구원이 낯설다는 얘기다. 자연 속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며 일반 은총을 떠올리는 건 한국이 앞서 있다. 한국은 또 기독교 전래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겪으며 십자가 아래 모이면 참화에서 벗어나는 실제적 구원의 원체험을 경험했다. 양국 복음화율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일본 선교를 꿈꾸는 이들이 귀담아들을 내용이다.
서 교수에게 일본 선교가 어려운 이유를 물었다. 그는 ‘탈아입구(脫亞入歐)’와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말했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에 진입하겠다는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 일본의 혼은 간직한 채 서구의 재주만 배워오겠다는 정신, 그렇기에 영혼의 거듭남을 강조한 기독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신 교육과 학문으로서의 기독교주의만 남게 됐다고 설명한다.
서 교수는 책에서 스스로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이용한 중증 하지 지체 장애인”이라고 밝힌다. 일본 도쿄에 정착했을 때 구청에서 “재난 시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도와 달라”고 쓰인 ‘헬프 카드’를 건네며 위기 시 명찰로 사용하라고 전한 일화를 들려준다. 그는 “진정한 국가의 품격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이들, 즉 마이너리티가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로 최종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책에는 그가 직접 그린 유화들이 수록돼 있다. 도서출판 동연은 표지를 비롯해 글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로만 절제해 그림을 배치했다. 서 교수는 “습작으로 2000점 정도 그리고 난 후에는 더 자신 있게 세상에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