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의 전설로 불리는 서봉수 9단은 토종 바둑의 대명사다. 1960년대에 정상급 기사들이 거친 일본 유학을 마다하고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다. 승부 근성이 강하고 처절한 싸움 바둑을 즐기며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잡초류’란 별명도 얻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유학파 조훈현과 양강을 형성한 ‘조서(曺徐)시대’를 구가했다. 90년대 들어 신산(神算) 이창호의 등장에 차츰 뒷전으로 밀려났으나 97년 진로배 국가대항전에서 중국과 일본 기사들을 상대로 9연승이란 초유의 대기록을 세우며 우승으로 이끈 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올해 칠순을 맞은 그가 승부사답게 새로운 도전, 위험한 도전에 나섰다. 국내 바둑계 최정상권인 후배 5명과 치수 고치기 5번기를 벌이는 ‘서봉수의 열혈 도전’이 그것이다. 바둑TV가 추석 특집 프로그램으로 마련했다. 대결 상대 9단들은 랭킹 1위 신진서를 제외하고 박정환(2위, 13일 대국) 변상일(3위, 12일) 강동윤(4위, 10일) 신민준(5위, 8일) 김지석(11위, 7일)이다. 호선으로 시작해 계속 패할 경우 정선, 2점, 3점, 4점으로 치수가 늘어나는 방식이다. 바둑팬들에겐 흥미만점이지만 자칫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사실 서봉수로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이들 후배에겐 역부족일 테다. 예상대로 7, 8일 대국에서 연패해 10일엔 2점 바둑을 둬야 한다. 최후의 방어선이 어디가 될지 관심이다.
치수 고치기는 프로 세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바둑 황제 조훈현이 젊은 강호 5명과 ‘위험 대결’이란 이벤트로 치수 고치기 10번기를 벌인 80년대 중반 이후 처음이다. 과거 일본에선 치수 고치기가 명예를 건 승부로 인식돼서 패배하면 치욕감을 느껴 삭발을 하거나 개명을 할 정도였다. 이런 부담스러운 대결을 랭킹 100위권 밖의 서봉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첫 판 패배 후 그는 “배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호선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무모한 바람을 가져보지만 (마지막 치수를) 정선에서 2점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의 열정적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