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무관심은 죄”라고 하였고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너무 무관심한 것도 병이지만 너무 한 가지 일에만 집착하는 것은 더욱 큰 병리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어떤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께서 한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시며 다니시던 여행 중에 한 작은 집에 초청되어 들어가셔서 쉬시는 동안 일어난 사건입니다. 초청받은 집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여주인공은 마르다였는데 분위기는 오히려 마리아에게로 옮겨졌다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두 여인에게서 본질적으로 다른 두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인이 존경하는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습니다. 마르다는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많은 일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속에는 다른 여인 마리아가 있었는데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아래’ 있었습니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복음서에 세 번 등장하는데, 각각의 경우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라는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눅 10:39, 요 11:32, 요 12:3).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삶 속에,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아니하는 위엣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사는 그 분야가, 그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도 드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여인의 다른 행동을 모두 나무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칭찬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것으로 분주했던 마르다가 ‘한가지’에 집념하고 있는 마리아를 걸고 예수님께 도전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의 수고를 말로, 행동으로 남과 비교하여 자기를 안 알아준다고 다 쏟아 내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도전을 받은 예수님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해답을 던져 주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많지 않다. 다만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마리아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눅 10:41~42·쉬운성경) 무서운 가치 판단이었습니다.
많은 일로 분주한 마르다는 실상 많은 일로 관심이 분산되어 있었기에 하나뿐인 ‘참’과 ‘영원’을 잃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참과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너무 대접하느라 분주하여 마르다 자신에게는 예수님 초청이 무익한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하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마르다에게 단순성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시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매스컴을 비롯한 각종 현대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들뜨게 하며, 끊임없는 욕망 충동을 재생산해 냅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심완성 목사(인천 영종도 임마누엘교회)
◇임마누엘교회는 인천광역시 영종도 운서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입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한 설교와 고린도 교회를 섬기던 사도 바울처럼 일하는 목회자가 삶으로 전하는 복음이 우선 되는 성도를 꿈꾸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