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말도 못 해요. 명절 지나고 나면 분리수거장에 어마어마하게 ‘쓰레기 산’이 생기거든요. 주차장 청소하고 불청객 같은 담배꽁초 정리도 하고 공문 온 거 처리하고 이제 좀 허리를 폅니다. 하하.”
영락없는 우리 동네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언어였다.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안부 인사는 연휴 시작과 함께 떠나보냈다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갖가지 작업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왔다. 열거된 작업만으로도 고단함을 짐작하기 충분했지만 목소리엔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다. 개척교회 목회자, 아파트 관리소장 역에 나란히 4년 차를 맞은 신재철(42) 좋은나무교회 목사와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개척 2년 차에 코로나19 팬데믹을 맞닥뜨린 그는 사방이 막혀버린 사역에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유튜버로의 길을 냈다. 그는 ‘좋은 인터뷰’라는 이름의 채널에서 삶으로 예배하는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국민일보 2020년 10월 26일자 29면 참조). 목사, 관리소장, 유튜버에 이어 지난달엔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했다. 책 ‘만화방 교회 이야기’(세움북스)의 저자다.
동네 교회 이야기 시리즈의 네 번째 판인 책에는 경북 청송군에 살던 열두 살 소년의 유년 시절 좌충우돌 성장기부터 신앙의 물꼬를 튼 청소년기와 사역자로의 길, 목회자의 삶과 관리소장, 만화방 삼촌으로서의 역할이 교차되며 벌어지는 극현실주의적 에피소드들이 이야기보따리처럼 담겨 있다.
신 목사는 “책상 위에 펼쳐진 다른 이의 일기장을 슬쩍 들여다보듯 재미나게 볼 수 있을 책”이라며 웃었다. 밤 12시가 되면 학교 운동장 한편에 놓인 ‘책 읽는 소녀’ 동상의 책장이 넘어간다는 괴담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학교로 찾아갔던 일, 교회학교 가는 길에 오락실에 들러 헌금하라고 받은 100원 중 50원을 탕진했던 일 등 초반부에 포진된 이야기들은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재구성한 듯 80년대생들이 유년 시절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장면을 펼쳐 보인다.
그는 “재미뿐 아니라 의미를 꼭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담고자 했던 의미는 기나긴 고생 끝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흥을 이루는 흔한 간증집 레퍼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핵심은 책의 부제로 딸린 ‘동네 사람, 동네 목사의 파란만장 교회 개척 이야기’에 있다. 동네 목사이기에 앞서 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는 인간 신재철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목회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신 목사는 일하는 목회자로서 아파트 관리소장이 된 것을 ‘하나님의 한 수’라고 표현한다. 난감하기 그지없는 각종 민원들을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초능력 대신 신앙으로 무장한 슈퍼 히어로를 떠오르게 한다. 본질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의 소중함’에 있다. 그는 “전도지를 1000장 돌려도 전도 대상자와 커피 한 잔 나누기 힘든 세상”이라며 “누군가의 필요로 나를 찾는 이가 생긴다는 건 소통의 물꼬가 터지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도 소회가 남달랐다. 과거 태풍이 들이닥친 날 아파트 순찰을 하다 계곡물처럼 쏟아지는 비에 맞서 모래주머니를 쌓고 군사작전처럼 주차된 차량을 옮겨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 승합차 대신 만화방을 보유한 교회로의 선택은 그의 책에 ‘동네 사람이 된 느낌이라서 너무 좋았다’는 문장을 쓰게 한 동력이었다. ‘목사님’ 대신 ‘만화방 삼촌’으로 불릴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은 과거에도 지금도 커다란 도전이다. 만화방 삼촌에게 예배당의 지향점을 물었다.
“개척교회일수록 교회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 문을 열어둘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게 중요해요. 동네마다 필요로 하는 공간은 다릅니다. ‘내가 불신자라면 어딜 가고 싶을까’ 시선을 돌리면 답이 보입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