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믿음생활을 한 모태신앙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교회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교회학교의 연극, 합창 등을 도맡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주보를 가리방(등사판)으로 긁곤 했다. 학생회에서 회장, 부회장을 맡아 행사를 기획하고 조직과 사회를 익히며 성장했다.
대학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진 않았다. 하지만 전공인 간호학은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5년, 간호대 교수로 35년을 지내고 정년퇴직했다. 법조인으로 성실하게 헌신하는 남편을 존경하며 온유한 성품의 1녀2남의 자녀와도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대회가 열렸을 때 시골에서 올라온 성도들을 안내한 기억이 난다. 예배 중에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을 들었다. 그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머릿속에 각인됐다.
사랑의교회 직장반에서 순장교육을 받고 순원들을 정성껏 섬겼다. 교회 생명윤리선교회 회장을 맡아 생명윤리 세미나, 낙태반대운동, 미혼모 지원사업을 펼쳤다. 인도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케냐 중국 예멘 등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했다. 한국전문대학간호학부장협의회 회장으로 간호학과 4년제 교육 일원화, 고등교육법 통과에 힘을 보탰다. 학생을 가르치며 간호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간 대상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고 학습성과에 기반한 교육과정 확립에 이바지했다.
고난과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의지하고 위로를 받는 것은 성경 말씀과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과 평안이었다. 찬송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를 부르길 좋아한다.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은 함께하셨다. 지치고 넘어진 나를 업고 가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다. 혼돈의 연속에서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될 것으로 확신한다.
<약력> △예수간호대 간호학과 교수 △여주대 간호학과 교수 △한국전문대학간호학부장협의회 회장 △한국간호연구학회 이사장 △사랑의교회 생명윤리선교회 회장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이사 △한나요양원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