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1:1-2)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마지막 재판을 앞에 두고 처형당할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쓴 옥중서신입니다. 편지의 내용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주님을 향한 확신과 신뢰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기뻐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늘 본문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흔히 이 구절을 편지의 인사말 정도로 생각하여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짧은 인사말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렸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누리는 그것을 다른 이들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는 ‘카리스’라는 단어인데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는 내가 노력해서 나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열매가 바로 평강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만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평강이 있습니까? 직장 생활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은 나의 소원을 다 만족시켜 주지 않기에 늘 불평과 원망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빌1:1)
종이라는 것은 주인이 따로 있음을 뜻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주인입니다. 사람들은 종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채, 마치 억압을 받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종의 의미입니다. 돈의 종이 되면 돈에 끌려 다니고 명예의 종이 되면 자존심에 얽매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욕망의 종이 되면 결코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다릅니다. 그분이 나의 삶의 핸들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평강이 있습니다. 나의 삶에 평강이 없다는 것은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에 주인 되시는 주님이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실 때 평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평강을 갉아먹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문제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습 속에 평강이 사라지고 있다면 은혜의 주님을 기대하며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 앞에 맡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 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주님 앞에 엎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 뜻대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렸습니다. 우리도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으로 말씀을 읽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복된 삶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발적으로 하지 못합니다. 또 자발적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삶을 거꾸러뜨리실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처음에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나는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뜨리셨습니다. 빛 되신 주님의 광채로써 그를 꺾으셨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 눈이 멀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에게 안수했을 때, 그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나서야 비로소 고백한 것입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9:18-20)
다시 말해 그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종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거꾸러뜨리셨을 때부터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든,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엎드렸든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으며 당시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훈련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누구보다도 열심이 있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 앞에 엎드릴 때까지 평강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의 인생을 주도해서 살아갈 때는 평강이 없습니다. 진정한 평강을 누리려면 주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쏟아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엎드리든, 하나님께서 거꾸러뜨리시든 우리는 모두 주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바로 그때부터 주님께서 나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다스려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엎드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은혜와 평강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