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잊고 사는 게 참 많습니다. 지인들과 헤어질 때 다음에 만나면 “밥 한번 먹자” 해놓고 금세 잊어버립니다.
본문에도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요셉과 감옥에서 만나서 요셉의 꿈 풀이대로 복직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그에게 요셉은 감옥에선 자신의 복직을 미리 말해준 잊지 못할 은인이었고, 요셉의 요청에 따라 왕에게 요청해서 요셉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와 다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복직했을 땐 요셉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 40:23) 이때 감옥에서 요셉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술 맡은 관원장을 원망했을까요. 아니면 “내일이면 혹시 나를 기억해 줘서 나의 억울함이 풀리진 않을까. 그래서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진 않을까” 하며 하루하루가 외롭고 힘겨운 희망 고문을 받았을까요. 우리에게도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항상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잊은 것 같아 외로울 때마다 여러분은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그런데 만약에 요셉의 바람처럼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리고 복직을 하자마자 그를 기억했다면 어땠을까요. 요셉은 순조롭게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올 순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요셉의 인생은 ‘그렇게 잘 살았더라’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그런 삶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창 41:1) 사람들은 요셉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그를 잊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볼 땐 2년이라는 시간이 잊혀짐의 시간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요셉을 향한 완벽한 타이밍을 예비해 주시고 준비하시는 시간이었습니다. 2년 후 애굽왕의 꿈을 통해 술 맡은 관원장이 다시 요셉을 기억나게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애굽왕 앞에 나오게 하고 완벽한 타이밍에 그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셔서 그를 감옥에서 살리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그의 가족을 구원하고, 그의 민족의 구원자로 세워주십니다.
우리는 3년 가까이 코로나19를 겪고 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끝나진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회복되는 중입니다. 코로나 기간 우리는 마치 감옥에 있는 것처럼 함께 모이지 못하고 홀로 방에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부분 대면 예배가 재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코로나19 기간 우리를 잊으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기간은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을 준비하시고 한국교회를 요셉처럼 사용하실 준비의 시간임을 확신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은 아무도 모릅니다. 요셉처럼 2년의 세월이 필요할지 아니면 20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또는 당장이라도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은 지금 나를 잊지 않으시고 완벽한 하나님의 타이밍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왜 나를, 우리 가족을, 한국교회를 기억하지 않으시냐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시간은 힘겨운 희망 고문의 시간이 아니라 소망의 시간이요,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대하는 시간입니다.
이은성 30기갑여단 필승교회 목사
◇이은성 목사는 민간인 군선교사(목동제일교회 파송)로 30기갑여단 필승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용사들이 기다리는 전역이 반드시 오는 것처럼 예수님도 분명히 다시 오신다는 것을 전하고 있으며 통일 후 군선교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