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 일가는 어느덧 200만명이라는 엄청난 수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큰 위협을 느끼고 히브리 가정에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던져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이런 엄혹한 시절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겨서 키워냅니다. 만에 하나 모세를 숨긴 것이 발각이라도 되면 이미 안전이 보장된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까지도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벼랑 끝에서도 모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거기에는 부정과 모정을 넘어서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 2:2) 한국어 성경으로만 이해하면 모세의 외모가 너무 출중해서 죽일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 ‘잘 생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에도 사용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했는데 ‘좋았더라’는 단어가 ‘토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단순히 인간의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당신의 형상을 보시고 ‘토브’, ‘아름답고 좋았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토브의 시선으로 모세를 바라봤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하나님의 시선, 토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죄로 왜곡돼 하나님 나라의 법칙과 기준이 깨어지고 세속의 기준, 잘못된 기준으로 세팅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많이 가진 자가 대우받고 많이 배우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토브의 시선을 가진 공동체는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깁니다.
이런 아름다운 일이 안디옥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던 영적인 리더 다섯 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먼저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를 개척한 목회자이자 레위 지파의 후손이었습니다. 다음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에서 파생된 단어가 ‘니그루’인데 ‘흑인’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제국에서 흑인들은 대부분 노예였습니다. 다음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학자들은 구레네 출신인 루기오 역시도 흑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음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마나엔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진 로마 왕가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바울입니다. 그는 철저한 유교적 배경 속에서 자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면면을 살펴보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안디옥교회의 영적 리더로 하나가 되어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안에 토브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 영적 리더로 쓰임 받았던 모세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시선을 가진 아므람과 요게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예수님의 마지막 대 명령인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토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봄으로 사분오열 깨어지고 갈라진 이 땅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우영화 목사(동부사랑의교회)
◇동부사랑의교회는 미국 캘리포니아 LA 치노 지역에 위치한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소속의 교회입니다. 시편 1편의 시냇가에 잇대어진 나무와 같은 행복한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