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참 신앙인으로 이끌어주셔서….”
“건강한 신앙인으로 성장해줘 고맙다. 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기쁨이 충만하길 기도할게.”
주한미군 민호창(51) 군종목사(소령)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마우신 분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민 군목이 목회자가 되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버지 민승(83·전 기독당 총재) 목사의 교육과 기도,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 군목은 “이버지는 늘 기도해주시며 믿음의 버팀목이 돼주셨다.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됐다”고 고마워했다. 두 사람은 친구처럼 솔직하게 대화하고 서로 존중한다. 민 군목은 민 목사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이다. 중학생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이민을 갔다. 교회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교회학교 찬양대원, 학생회장으로 섬겼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 고대언어학과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이후 감리교 계열의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 육군 군목(대위)으로 임관했다. 뉴욕 포트드럼 부대, 호헨펠스 보병부대, 포트 잭슨, 켄터키주 포트낙스 등에서 근무했다. 시라큐스대 경영대학원(MBA) 위탁교육을 받았다. 그는 신대원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연수할 때 독일 여성 베르나 하아스씨를 만나 결혼, 1녀 2남을 뒀다.
그는 최근 경기도 평택 미군부대(캠프 험프리스) 군목으로 부임했다. 주한미군 장병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인도한다. 민 군목은 “군은 계급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위계질서, 상명하복, 통제된 집단생활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고립과 소외 등 기본적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며 “여기에 코로나19 상황으로 발생한 다양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면 좀 더 변화한 목회상담과 예배, 기도생활 같은 종교적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군 군목 중에 카파운 신부님이 계셨어요. 6·25전쟁에 참전해 포로로 잡혔을 때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고 예배를 인도하다 결국 굶주림과 질병으로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카파운 신부님뿐 아니라 6·25전쟁 중에 미군 군목 12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분들의 피 흘림이 있었기에 이 땅의 평화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장병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성경공부 인도 중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놓을 때 복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민 목사는 미국에서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 자격을 취득해 현지 한의원을 개원했다. 이후 한국 정치와 교회 성장을 위해 귀국했다. 민주화 투쟁에 힘을 기울였다. 군정 연장 반대, 한·일 굴욕 외교 반대, 3선 개헌 반대 등을 외치다 3차례에 걸쳐 수감되기도 했다. 20여년간 장로로 섬기고 50대 초반에 신학교를 졸업,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민 목사는 가족과 함께 늘 가정예배를 드렸다. 한국인의 예절과 전통을 교육했다. 인성과 재정교육을 위해 글씨와 일기, 금전출납부를 쓰게 했다. 달리기, 탁구 등 운동을 함께하고 악기를 가르쳤다.
민 목사는 이날 아들 민 군목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며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 군목은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며 “6·25전쟁 당시 자유를 위해 수많은 미군 장병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었다. 제가 태어난 한국을 지킨 분들의 희생을 기리며 주한미군에서 복무할 동기를 찾았다”고 했다. 이어 “장병을 상담하는 보람이 있다. 군인들은 믿음 생활을 통해 군부대는 물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민 군목이 “예수 향기를 발하는 군목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장래 희망을 밝히자, 민 목사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군목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바란다”고 답했다. 부자의 기도제목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복음 통일이 되는 것이다.
양평= 글·사진 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