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달 28일 조금 생소한 보고서를 냈습니다. 통상 자동차 업계의 동향, 시장 특징, 정책 변화 등을 다루는데 이번엔 한 완성차 업체를 주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어디였을까요. 독보적 전기차 1위 테슬라? 내수시장을 업고 빠르게 성장하는 BYD? 전통의 강호 독일 3사(메르세데스 벤츠·BMW·아우디)? 아닙니다. 이제 생긴 지 5년 된 베트남의 유일한 완성차 업체 ‘빈패스트’입니다.
빈패스트는 베트남 대기업 빈그룹의 자회사입니다. 출범과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며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렸죠. 잘 나가던 빈패스트는 지난 7월 내연기관차 생산을 완전히 중단합니다. 대부분 완성차 업체는 점진적으로 전기차 비율을 늘려 언제까지 100% 전환을 이루겠노라 ‘선언’했지만, 빈페스트는 아주 작은 미련도 남기지 않고 바로 ‘실행’했습니다. 전체 생산라인을 전기차용으로 돌리고, 배터리팩 공장 설립에 들어갔습니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 사업도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삼성이 아니라 ‘베트남의 테슬라’로 불린다고 합니다.
통상 완성차 업체는 내수시장을 먼저 공략한 뒤 해외시장에 진출합니다. 이와 달리 빈패스트는 미국 전기차 시장부터 뚫겠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전시관을 열어 전기차 모델을 홍보하고 체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미국의 탈(脫) 중국 기조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고 제조업 기반이 우수한 빈패스트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미국에서의 기업공개(IPO), 판매·정비 인프라 구축, 브랜드 인지도 개선 등도 과제입니다.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도 빈패스트에 타격입니다. 빈패스트도 2024년까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지을 계획인데, 그때까지는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패스트의 과감한 결단과 도전은 놀랍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