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산유국의 감산 결정을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재검토를 고려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는 감산 결정을 늦춰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받고서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모두 감정적 불만까지 드러내는 상황이어서 관계 악화가 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관은 11일(현지시간) CNN방송에서 “OPEC 플러스(OPEC+)의 감산 결정과 관련해 대통령은 사우디와의 양자 관계를 재평가하고 그것이 필요한 지점에 있는지, 우리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커비 소통관은 “대통령은 감산 결정에 실망했고 향후 사우디와 관계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 의회와 공조하고 싶어한다”며 “곧 (의회와)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사우디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로버트 메넨데즈 미 상원 외교위원장(민주·뉴저지)은 전날 성명을 통해 “사우디가 원유 감산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며 무기 판매를 포함한 사우디와 모든 협력 중단을 촉구했다.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인 딕 더빈도 “미국에 맞서는 건 푸틴과 사우디뿐”이라며 “(사우디는) 한 번도 미국의 진정한 동맹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OPEC+ 감산 결정 며칠 전 미국 정부 관리들은 사우디와 주요 산유국 상대방들에 전화를 돌려 ‘다음 회의로 감산 결정을 미뤄 달라’는 긴급 요청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우디 등으로부터 ‘결코 안 된다(No)’는 단호한 답변을 받았다고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들이 밝혔다.
무함마드 왕세자 측도 미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WSJ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방문 때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대한 개인적 대화 내용을 공개한 데 대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분노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사우디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 복원에도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바이든 행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언급까지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사우디와 군사 협력을 중단하거나 OPEC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톰 맬리나우시키, 숀 케이스튼 등 민주당 하원의원은 90일 이내에 사우디·아랍에미리트의 미군 병력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등 장비를 철수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다만 사우디와의 군사협력 중단은 이란에 대한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OPEC에 대한 공격은 휘발유 가격 추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어 부담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논평이 사우디에 대한 경고인지, 사우디에 약하다는 내부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며 “공식적인 (관계) 검토를 위한 팀은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