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피의 보복’ 양상을 보이면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자 서방이 ‘푸틴 달래기’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이성적 행위자’로 칭하고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어놨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현실적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가 그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계에서 가장 큰 핵보유국 중 하나의 세계적 지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전략적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일엔 “아마겟돈(인류 최후 대전쟁)이 올 수 있다”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을 ‘이성적 행위자’로 보는지에 관한 질문에 “나는 그가 상당히 오판을 한 이성적 행위자라고 생각한다”며 “그는 키이우에서 환영받으리라 생각했을 텐데 완전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에 여지를 남겼다. 그는 “(회담 여부는) 그가 세부적으로 무슨 주제로 대화할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면서 “만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투옥된 미국 농구 스타 브리트니 그리너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면 대화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국영TV에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만남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미·러 정상회담을) 제안받으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러시아의 핵 무기 사용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아직까지 핵무기 사용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벨기에 브뤼셀 본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핵전력을 감시 중인데 태세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나토는 13일 ‘핵전략 회의’를 주재하고 내주 정례적인 ‘핵 억지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영국의 정보기관도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실제 사용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전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도·감청 전문 정보기관 정보통신본부(GCHQ)의 제레미 플레밍 국장은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설에서 “어떤 기술적 준비 조치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다만 당분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G7 정상과의 화상회담에서 “현대적이고 효과적인 방공시스템을 확보하면 러시아 테러의 핵심인 로켓 공격도 중단될 것”이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은 백악관 방공에 사용되고 있는 첨단지대공미사일체계(NASAMS) 2기를 곧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