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건강

[And 건강] 호흡·발성·삼킴 위협하는 두경부암, 복합치료로 생존율 쑥

김세헌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내시경을 이용해 여성 환자의 인두와 후두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연세의료원 제공
 
남성이 3배 위험, 흡연자는 15배
턱뼈·후두 절개 따른 부작용 적고
흉터 걱정 없는 로봇수술이 대세
종양 클땐 항암으로 크기 줄인 후
로봇수술로 암 부위 정밀 제거
수술 후 방사선 치료로 재발 방지
3,4기 환자 생존율 30%→69%
구강 청결과 금연·금주가 중요
양치·스케일링 등 게을리 말아야

두경부암은 머리(頭)와 목(頸) 부위에 발생하는 암을 통칭한다. 뇌 아래부터 쇄골 사이 부분으로 안구는 제외된다. 두경부에는 호흡과 발성, 연하(삼킴) 등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김세헌 교수는 17일 "두경부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이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은 정상적인 호흡과 목소리, 삼킴 기능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두경부암 진료 환자는 4년 전 보다 약 19% 증가했고 매년 2만명 넘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 보다 3배 이상 많이 걸리고 환자의 80% 가량은 40~60대에 분포한다.

흡연이 주된 원인이다. 흡연자가 두경부암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보다 15배 이상 높다. 근래엔 구강 성접촉을 통해 옮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로 인한 두경부암 발병 사례도 느는 추세다. 암이 생기는 구체적 부위에 따라 두경부암의 암종을 나눌 수 있다. 말하고 숨쉬는 기능을 하는 후두, 공기와 음식이 통과하는 인두, 맛을 느끼는 혀(설), 침이 나오는 침샘, 면역을 유지하는 편도, 입술(구순) 등이 포함된다. 발병률이 높은 갑상샘암도 두경부암에 포함된다.

후두암과 인두암은 목소리가 쉬거나 갈라지는 등 변형이 일어나고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며 림프절로 전이되면 혹이 만져지기도 한다. 설암은 혀에 불규칙한 하얀 반점이 보이고 출혈이 줄곧 발생하고 식사 시 불편감이 있다. 침샘암은 침샘이 있는 귀나 턱 아래가 붓고 시간이 지날수록 안면에 통증과 마비가 동반된다. 편도암은 목 안 이물감과 음식을 삼킬 때 불편함이 느껴지고 피 섞인 가래가 나오기도 한다. 구순암은 입술에 딱지가 생기고 미세한 출혈이 있다. 갑상샘암 역시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음식 삼키기가 어려워지는 증상을 보인다. 2015년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의하면 두경부암의 종류별 발병 건 수는 후두암이 제일 많았고 인두암, 편도암 순으로 뒤를 이었다.

두경부암의 표준 치료는 수술인데, 남아있는 미세한 암세포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수술과 동시에 혹은 단일로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 두경부암에서도 로봇수술이 대세다. 인두나 후두는 의사가 손을 넣어 수술하기에 매우 좁고 복잡한 구조로 돼 있다. 기존에는 이 부위에 암이 생기면 수술을 위해 턱뼈를 자르거나 후두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절제하고 결손 부위에 몸의 다른 곳 피부를 떼와 이식하는 수술을 추가로 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호흡이나 발성, 삼킴 기능에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로봇수술을 이용하면 육안보다 10배 높은 고해상도 3차원 영상을 통해 암 부위만을 정밀 타깃해 제거할 수 있다. 의사는 좁은 공간에서도 5~8㎜ 정도 얇은 로봇팔을 자유롭게 움직여 턱뼈나 후두의 절개 없이 수술 가능하다. 김 교수는 “로봇수술은 구인두·하인두·후두 같이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발생한 암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며 “최근 4년간 진행한 두경부암 로봇수술에서도 구인두암(64.5%) 하인두암(18.7%) 후두암(12.8%) 순으로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갑상샘암과 침샘암 등을 수술할 때 흉터가 외관상 많이 드러났던 기존 방법과 달리 로봇수술로 진행하면 구강을 통하거나 귀 뒷편, 겨드랑이 등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을 작게 절개해 접근하기 때문에 미용 효과가 높은 점도 장점이다. 수술 부위를 메우기 위해 피부를 이식할 필요가 없어 수술 시간도 최소 5시간 단축된다. 로봇팔이 이를 조정하는 의사의 손떨림까지 잡아줘 안전하고 환자가 느끼는 부담이 적다. 수술 후 호흡이나 발성, 삼킴 기능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국내 처음 두경부암에 로봇수술을 도입했고 후두암과 하인두암 치료의 경우 세계 최초의 기록도 갖고 있다. 후두는 발성을 담당하는 부위로 암 수술 시 기능 보존이 특히 중요하다. 또 인두의 가장 아래쪽인 하인두는 음식이 식도로 넘어가기 직전의 부위여서 암 병기가 높은 경우 인접한 후두를 같이 제거하기도 해 정상적인 호흡과 발성 기능을 잃을 수도 있다.

로봇수술 초창기에는 인두암과 후두암 중 병기가 낮은 1·2기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로봇 장비의 발전에 따라 김 교수는 2015년 암이 많이 진행된 3·4기 환자들을 대상으로도 로봇수술을 진행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종양이 너무 커서 당장 수술하기 곤란하거나 발성·삼킴 등의 기능을 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에도 수술에 앞서 항암제를 써서 암 크기를 줄인 뒤 로봇으로 정밀하게 조준해 정상 조직은 최대한 보존하고 암 부위만 제거하는 기술을 표준화했다. 수술 후 잔존 암세포의 재발을 막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추가로 시행하기도 한다. 선행 항암-로봇수술-방사선으로 이어지는 이런 복합 치료 방식으로 기존 30%에 불과했던 진행된 인두·후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을 69%까지 배 이상 끌어올렸다. 인두의 위쪽인 구인두암의 치료 성적(1·2기 5년 생존율 94%, 3·4기 78%)은 세계적 암 치료기관인 미국 메모리얼슬론캐터링암센터(65%)를 훨씬 앞선다.

두경부암 예방을 위해선 구강 청결과 금연·금주가 매우 중요하다. 구강 내 염증이 암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평소 양치와 가글링을 잘 하는 것이 도움된다. 정기 스케일링과 치과 검진도 필요하다. 치아 교정을 하거나 틀니를 사용하고 있다면 구강 내 보철물의 위생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구강 성접촉으로 HPV가 입 속으로 들어가 편도암이나 혀뿌리암 등을 유발할 수도 있는 만큼 남녀 모두에게 HPV백신 접종도 권고된다. 담배와 술은 구강과 호흡기 점막을 손상시켜 두경부암이 발생하기 쉽게 한다. 최근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흡연의 과거력이 10년 미만이면 금연했을 때 발암 위험이 7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