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2015년 3월 특집프로그램 제작 차 떠난 지방 출장길에 느닷없이 주기철 목사에 대한 다큐 제작을 제안받았다. 그분은 교계의 명망 있는 목사님이었지만 나와는 초면이었다. 나는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제작 중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완곡히 거절의 뜻을 밝혔다. 또 다른 이유는 오로지 신앙만을 지키다가 순교하신 분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낸다는 게 과연 회사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솔직히 더 큰 이유는 달리 있었다. 그동안 주로 시사고발프로를 연출하며 비판적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던 내가 한순간에 ‘예수 환자’로 커밍아웃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출장 중 숙소에 돌아와 눕기만 하면 그 제안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비슷한 선택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를 이끈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이 이번에는 그다지 달갑지 않게 여겨졌다.
그러다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과 회사의 눈치를 보고 동료 후배들의 눈을 의식했던 속마음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주기철 목사 일대기는 성탄 특집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방송 이후 회사와 PD 동료들의 반응은 조롱 대신 찬사였다.
로마서 12장 2절은 30대 후반, 교회 대학부를 섬길 때 당시 대학생들과 특별집회를 준비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었다. 혼탁한 시대에 세상의 유행과 문화를 좇지 말고 주님의 뜻을 구별해 살아보자는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이때부터 모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이 말씀을 기준으로 삼았다.
고발 프로인 추적60분에 ‘아버지 학교’가 긍정적인 대안으로 처음 소개됐다. 2013년 손양원 목사님의 특집 방송과 그 이후의 극장 개봉, 그리고 영화 일사각오와 손정도 목사 특집에 이르기까지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의지했다.
지난해 성탄 특집 ‘머슴 바울’을 제작할 때 이 말씀은 또 한 번 나를 흔들었다. 안식년 1년 동안엔 제작을 할 수 없다는 회사규정 때문에 머슴 바울 제작을 접어야 했다. 아무리 회사를 설득해도 통하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내가 조기 사직하고 외주 프리랜서 피디로 제작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대가는 조기 사직에 따른 월급과 실업급여의 포기였다. 이번에도 주님은 흔들리는 나를 말씀대로 이끄셨다.
그렇게 탄생한 머슴 바울은 극장판으로 새로 만들어졌고 올해 19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곧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은 세상문화에 맞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나의 발걸음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약력 △KBS 시사다큐 프로듀서, 도쿄 PD특파원 역임 △현 아신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