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주일(30일)이 다가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구호는 익숙하지만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어떤 모습을 콕 집어 회복해야 할지는 각양각색인 것 같습니다. 도시선교 전문가 팀 켈러 목사는 최신작 '탈기독교시대 전도'(두란노)에서 과거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초대교회의 특징으로 나그네 환대, 가난한 이 돌보기, 용서, 생명 중시, 성 문화를 꼽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로부터 모색할 극복 방안을 5회에 걸쳐 들여다봅니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경기도 안산 다문화음식거리. 한국어보다 중국어와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 간판이 더 자주 보이는 이곳에 28년 전 박천응(60) 다문화교회 목사가 설립한 안산이주민센터가 있다. 지난 19일 찾은 이곳에선 박 목사가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온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소통하는 이들의 대화 주제 중 하나는 ‘난민’이었다. “우리나라 인권 상황이 나아지면서 최근 각국 난민이 꽤 들어오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난민 인식은 부족한 실정이지요. 한국교회도 이주민을 넘어 난민선교를 특화해야 할 겁니다.”
1994년 이주민 선교를 시작한 박 목사는 ‘한국 다문화 박사 1호’ ‘이주 노동자의 대부’란 수식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시아 이주 노동자와 한국인 부부의 자녀를 일컫는 ‘코시안’이란 가치 중립적 용어를 만들어 국내에 보급했으며, 안산 단원구 원곡동에서 ‘국경 없는 마을’ 운동 등을 펼쳐 이주민 인식 개선 활동에 힘썼다. 고용허가제와 거주외국인지원조례, 다문화가정지원법 등의 입법 과정에도 민간 대표로 참여했다.
여러 성과를 냈지만 모든 일이 순탄키만 한 건 아니었다. 사역 초창기, 지역주민은 박 목사의 활동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반월·시화 공단을 떠나는 한국인 노동자가 늘고 그 자리를 이주 노동자가 채우면서 시선은 더 차가워졌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주 노동자가 점점 증가하고 센터도 ‘내국인과 외국인이 잘사는 방안을 찾는 곳’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지역주민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렇게 90년대 본격 시작된 한국교회 이주민 선교는 이제 국내 이주민의 눈물을 닦아준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27년간 몽골 이주민을 섬긴 나섬공동체(대표 유해근 목사)를 비롯해 주요 대형교회 역시 이주민 선교에 적극 나섰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온누리교회 영락교회 안산동산교회 주안장로교회 등은 언어·국가별 예배 공동체를 꾸려 이주민의 애로사항 청취와 신앙 훈련에 힘쓴다. 이주민 선교에 한국교회가 이토록 열심인 건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란 예수의 말씀 때문이다.(마 25:35)
박 목사는 “이제 한국교회에서 이주민 선교는 변방이 아닌 주류”라면서도 “약자와 동행했던 초대교회 정신을 본받아 한국교회가 주변 이방인과 사각지대를 부지런히 돌볼 것”을 당부했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을 기준으로 변방에서 일어난 메시아운동의 한 갈래였다. 이런 미약한 종교운동이 어떻게 제국과 세계를 뒤흔드는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된 걸까(그래프 참조). 전문가들은 ‘나그네 환대 정신’을 그 주요 원인으로 본다.
선교신학자 이명석 아신대 국제교육원 교수는 “기독교 초기 공동체가 사회 변혁의 원동력을 가질 수 있던 건 강자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약자의 어려움을 같은 약자의 눈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라며 “복음을 몸소 실천한 초대교회 영성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는 오늘의 한국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성서신학자인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 역시 “기독교 복음은 가정 같은 ‘친밀함’과 민족과 언어의 경계를 넘는 ‘개방성’이 특징인데 이 두 상반된 경향이 공존할 수 있는 건 그리스도인이 자기 집에 나그네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한국교회가 앞장서 환대를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포용적으로 될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창조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