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종합관 3층에 ‘M+미디어센터’가 들어선 것은 지난해 11월 30일이었다. 429㎡(약 130평) 크기의 공간엔 최신식 조명과 음향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 3개가 만들어졌고, 학생들은 이 시설 덕분에 미디어 사역에 유용한 기술들을 좀 더 수월하게 익힐 수 있게 됐다.
당시 감신대에 이 시설을 봉헌한 곳은 경기도 성남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였다. 만나교회가 ‘M+미디어센터’를 만드는 데 든 비용은 무려 5억원. 이 금액은 누가 내놨을까. 그 답은 ‘M+미디어센터’를 찾으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입구에 걸린 동판 4개에 기부자들 이름과 얼굴이 새겨져 있어서다.
최순옥(67) 사모도 그 중 하나다. 최 사모는 만나교회에 출석하는 사위(44)를 통해 김병삼 목사의 설교 영상을 자주 찾아보게 됐고, 교회에 1억원을 기탁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국민일보와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세아기) 캠페인을 벌이는 ㈔월드휴먼브리지 관계자들은 최 사모와 기부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논의했다. 그리고 기부금은 ‘M+미디어센터’로 흘러 들어갔다.
25일 만나교회에서 만난 최 사모는 ‘M+미디어센터’ 개관 예배에 참석했을 때를 회상하면서 “당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한다는 마음이 들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주의 종을 키우라’는 명령이었죠. 하지만 제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 없잖아요. 오랫동안 마음의 짐이었는데 그게 만나교회와 월드휴먼브리지를 통해 (‘M+미디어센터’라는) 그런 방식으로 구현되니 놀랍더군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다 계획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었죠.”
최 사모가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은 배경을 살피려면 치열했던 그의 삶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최 사모의 어머니는 남대문시장에서 떡 공장을 운영했고, 최 사모는 스물세 살 때 어머니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았다.
공장은 주야장천 바쁘게 돌아갔다. 최 사모는 20대 시절을 몽땅 떡을 만드는 일에 쏟아부어야 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공장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데, 1년 매출액이 2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공장을 물려받았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에게 신앙심은 없었다. 불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교회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외려 젊은 시절엔 교회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최 사모의 어머니 역시 ‘예수 믿는 사람’에겐 떡도 팔지 않을 정도로 성도들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최 사모는 20대 후반에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그는 “내가 교회에 나가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놀랐었다”며 웃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깡패 같은 저 여자가 어떻게 교회에 나가게 된 거냐고(웃음). 그런데 제 입장에선 교회에 계속 갈 수밖에 없었어요. 눈을 감고 뜰 때마다 예수님 모습이 환상처럼 제 앞에 펼쳐졌으니까요.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저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강제로 저를 교회에 끌고 가셨던 것 같아요.”
최 사모는 ‘M+미디어센터’ 설립 비용 외에도 그간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상당액을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쓰고 있다. 그는 그간의 기부 내역을 공개해 달라는 말에 겸연쩍은지 열없는 미소만 지어보였다.
가족들은 그의 나눔 사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 사모의 남편은 교정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최영호(74) 목사다. 최 사모는 “남편은 내가 하는 일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떡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외동딸(44)과 사위는 기부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최 사모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최 사모가 ‘기부 욕심’을 드러낼 때마다 항상 동조해주곤 한다.
“참 신기한 게 돈이라는 게 ‘내 것’이 아니더라고요. 돈을 기부하면 어느 순간 기부한 금액만큼, 혹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니까요. 딸과 사위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절대 토를 달지 않아요.”
세아기 캠페인의 취지 중 하나는 기부가 노년의 삶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선사할 수도 있음을 알리자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인구에서 60세 이상은 전체의 25%를 웃돈다. 이들이 기부를 통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다면 인생의 후반전이 좀 더 풍성해질 수도 있다.
최 사모는 기부 경험자로서 또래 장년층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당부가 있는지 묻자 “돈은 남한테 줄 때 가장 기쁜 법”이라며 웃었다. 이어 “돈은 한 곳에 고여 있으면 안 된다”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위해 내놓은 만큼 하나님이 다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언젠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면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이고, 우리 딸, 잘하고 왔다.’ 이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 이런 칭찬 들으려고 열심히 살아왔으니까요.”
성남=글·사진 특별취재팀 박지훈 최경식 기자, 조재현 우정민 PD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