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낵 영국 보수당 대표가 25일(현지시간) 57대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사상 첫 유색인종 총리 탄생에 인도계를 포함한 아시아계 영국인들이 환영과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편에서는 ‘금수저’ 출신에 1조원 이상 재산을 가진 부자인 그가 평범한 시민의 삶에 공감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수낵 총리는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뒤 총리로 공식 임명됐다. 이어 다우닝 10번가 총리관저 앞에서 취임 연설을 했다. 그는 “전임 (리즈 트러스) 내각의 경제정책 방향이 틀리지 않았지만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면서 “이 실수를 만회하는데 총력을 다해 (영국)경제의 안정과 자신감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내각은 당의 통합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러스 전 총리가 쿼지 콰텡을 경질하고 임명한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영국의 옛 식민지인 인도는 힌두교가 종교인 수낵의 총리 당선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수낵 총리는 인도계 영국인의 ‘살아있는 가교’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수낵 총리의 당선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디왈리’ 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가득한 인도 뉴델리의 거리에서 런던 서부의 쇼핑 거리에 이르기까지 환성이 일었다”고 전했다. 디왈리는 힌두교 달력에 따른 새해 축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의 총리 당선이 영국이 다문화·다종교 사회로 발전하는 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1947년까지 89년간 식민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영국에는 인도에 뿌리를 둔 시민 150만명이 살고 있다.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데다 1조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그가 서민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올해 5월 기준 수낵 총리와 인도 재벌의 딸인 아내 야크샤타 무르티의 자산은 7억3000만 파운드(1조1820억원)에 이른다. 런던 북동부 달스턴의 한 시장에서 과일·야채 노점을 운영하는 사무엘 샨은 “그는 우리 같은 평범한 노동자 계급이 어떻게 사는지 모를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듯한 과거 모습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수낵 총리는 재무장관이던 지난 3월 한 편의점에서 콜라 한 캔을 사면서 신용카드를 바코드 리더기에 갖다 댔다. 편의점 직원이 손짓으로 콜라를 먼저 리더기로 찍으라고 한 뒤에야 결제를 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자가 비접촉 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른다”는 조롱이 잇따랐다.
유가가 떨어졌음을 홍보하기 위해 기아차 리오에 기름을 채운 사진을 공개한 것도 논란이 됐다. 해당 차량은 주유소 직원의 것이었는데 수낵 총리가 덜 부유하게 보이기 위해 연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그의 업무용 차량은 재규어였다.
백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