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76)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에서 승리했다. 12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룰라는 브라질 첫 3선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다. 그의 승리로 중남미에 불붙은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가 재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노동당의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대선 결선 투표에서 50.90%를 득표해 49.10%를 얻은 사회자유당 후보 자이르 보우소나루(67) 대통령에게 1.8% 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 1989년 직선제가 브라질 대선에 도입된 이후 가장 작은 차이다. 지난 2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는 룰라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 득표에 실패해 이날 결선 투표를 치렀다.

룰라는 대선 승리 확정 후 상파울루에서 연설을 통해 “브라질은 2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 위대한 국가”라고 말했다. 이어 “분단된 나라와 끊임없는 전쟁 상태에서 사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이 좌·우파 간 극단적인 이념 대결로 전개된 것을 의식해 통합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빈민가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구두닦이와 땅콩 행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2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기업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8년 구속됐다. 지난해 유죄 판결이 무효가 되면서 피선거권을 회복한 뒤 이번 대선에서 승리했다.

룰라의 승리로 2000년대에 이어 제2의 핑크 타이드가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콜롬비아 모두 좌파를 선택해 중남미 곳곳에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특히 브라질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협의체)를 계기로 중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룰라의 당선은 미·중 대결 구도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룰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이 나토에도 부분적으로 있다고 주장했고, 중국과 좋은 관계를 원한다”며 “그의 외교 정책은 서구에서 논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축하 메시지를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협력을 지속하고 함께 일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트위터로 축하를 전하면서 “두 나라는 힘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릭스 회원국인 중국과 러시아, 인도도 축하 인사를 전달했다.

룰라가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무분별한 삼림 파괴로 훼손된 아마존을 되살려야 하고 무엇보다 분열된 브라질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룰라는 공공부문 개혁, 여성 안전, 경제 성장 등을 약속했다.

당면한 관건은 1.8% 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승복하느냐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브라질 사회는 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대선 패배 후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로 면책 특권을 잃게 돼 공금 횡령, 코로나19 부실 대응에 대한 수사도 받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 뒤 나타난 혼란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